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말하는 건축가 - 인생 마지막 몇 페이지를 스크랩하다

효준선생 2012. 3. 11. 00:54

 

 

 

 

평생 한 우물만 파다가 간 사람의 그림자는 짙고도 깊었다. 길지 않은 삶의 궤적을 무엇인가로 기념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세상을 뜨면 후대 사람들의 평가를 알 길은 없지만 그걸 지켜보는 남겨진 사람들에겐 안타까움과 더불어 부러움도 생겨난다. 향년 67세로 작년 타계한 건축가 정기용의 인생 마지막 두어 페이지가 영화 말하는 건축가로 남겨졌다.


이 영화는 정기용 선생의 마지막 전시회라고 할 수 있는 2010년 11월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과 그동안 그가 손을 댄 전국 이곳 저곳의 건축물과의 인연을 그리고 있다. 특히 안성 주민센터에 만든 목욕탕 장면은 의미가 있어 보였다. 아무도 만든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그곳, 선생보다 나이 지긋한 노인들을 위해 꾸며놓은 목욕탕 입구에서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던 엔딩장면은 인상적이다. 건축가들은 신나게 만들어 놓은 건축물을 신나게 이용할 여유가 있을까? 선생도 여기서 몸 한번 담그지 못했을 법하지만, 오프닝에 나오는 목욕장면을 보니, 그래도 운이 좋은 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선생은 후학들에게 어눌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그게 지병이 되어 목숨을 앗아간 원천인지는 모르지만, 핀 마이크를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이야기를 채 다 하지 못할 정도인 그가 마지막 열정을 토해가면 건축이란 외표가 아닌 그 건축을 이용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말을 했을땐, 그렇게 만들지 못하는 요즘 건축물과 오버랩되면서 씁쓸해졌다.


동대문 역사문화 공원에 만들어 지고 있는 정체불명의 외계 건축물.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들고 있는 것일까 단순히 외국 유명 건축가에게 전권이 돌아갔기에 섭섭해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서울 성곽이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마치 하늘에서 툭하고 떨어진 주변 환경과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건축물을 우리가 왜 받아내야 하는 걸까  선생의 심정은 어땠을까 혹시 자신이 나서서 맡아보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하기사 북경 자금성 건너편 천안문 광장에 만들 공연장도 거대한 돔형으로 중국의 문화 전통과 어울리지 않아 한동안 말들이 많았는데, 건축이라는 건 한번 만들면 최소한 수십년, 수백년 갈 생명체에 다름아니기에 신중했어야 함에, 공산품 찍어내듯한 건물에 무슨 인간미가 흡입될 수 있겠는가.

일민 미술관 전시는 선생의 마지막 숨결인 셈이다. 영화 전반부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수척한 모습과 머리를 밀고 모자를 눌러쓴 모습이 병색이 완연해보였다. 그럼에도 꼬장꼬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기념전시를 둘러보고 심지어 강연까지 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거장은 허투로 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그 나이쯤이 되어 사람들이 “당신의 인생은 무엇을 위해 쓰여졌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건축가였다, 아닌 지금도 건축가다”라고 할 수 있으니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 그에게 삼라만상은 모두가 고마움의 대상이었을 듯 싶다.


비록 이 다큐멘타리가 유족들에겐 유작처럼 남겠지만 혹시라도 어느 방면에서 한 우물만 팔 생각이 있다면 한번쯤은 먼저 가신 분을 追念해보는 것은 어떨까

 

 

 

 

 

 

 

 


말하는 건축가 (2012)

Talking Architect 
9.8
감독
정재은
출연
정기용, 승효상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95 분 |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