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로맨스 조 - 내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실라우

효준선생 2012. 3. 9. 00:49

 

 

 

 

 

한국영화에서 비선형 전개방식의 영화는 아직 낯설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생하는 사건에 시선을 집중해가며 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판에 액자구조라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고 그게 話者에 따라 교집합과 여집합으로 이야기가 뭉쳤다 흩어진다. 거기에 종종 플래시백까지 동원해 시제를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전 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단련되어서 그런지 영화 로맨스 조는 마치 홍역을 앓고 난 뒤의 면역과도 같이 경쾌하게 소화시킬 수 있었다.


재작년 개봉된 인셉션은 무엇보다 이야기속의 이야기라는 전개방식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다. 그 이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이야기 안의 누군가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새로 듣게 된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맨 앞에서 이야기하는 그 사람”인 경우, 복잡하지만 한 인물의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를 주물럭거리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되었다.


그런데 영화 로맨스 조는 거기에 추가로 영화를 끌고 나가는 가장 중요한 세 명의 핵심인물인 로맨스 조, 어린 로맨스 조, 그리고 초희의 전후 관계가 상당히 복잡하다. 그리고 그들을 한데 묶어 주기도 하고 풀어 헤치기도 하는 나레이터 역할의 서담과 레지는 또 다른 화자로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이 사람이 과거의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인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을 강요받았을땐 메모지에 관계도를 그리다 포기할 정도가 되었다. 


지금 화면에 비춰지는 에피소드에 혹했다가 화면이 바꾸면 누군가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럼 앞과 뒤에 나오는 두 개의 에피소드가 엮어 앞으로 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맴을 돌거나 되돌아가는 방식이 된다. 현기증이 날만도 하지만 그 누군가, 그 무엇인가를 발굴(?)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리고 이렇게 꼬이기만 한 인물관계가 결국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들은 한방 먹게 된다.


지방대 국문과 출신의 현재는 다방 종업원이자 티켓도 파는 여자가 있다. 그녀에게 삶의 가장 중요한 매니지먼트는 무엇일까? 다방 커피 한잔에 얼마나 벌 수 있을까?티켓을 끊어주면 당연히 몇 배의 수입을 거둘 수 있지만 얼굴도 몸도 예전 같지 않다. 또 한 사람 비록 300만명을 동원한 영화를 찍은 감독이지만 늘 크리에이티브의 고갈 때문에 프로듀서에게 갈굼을 당한다. 그를 가장 현혹시킬 만한 재미는 무엇일까? 시켜먹는 커피 한잔 일까? 다방 종업원과의 원나잇 스탠드일까? 아니면 영화로 만들만 한 소재의 이야기꺼리일까?


가운데 구멍이 뚫린 네모난 도화지를 바닥에 차곡 차곡 쌓아가면 버려지는 부분이 있고 가운데 부분엔 공통으로 모아지는 부분이 있다. 이 영화에선 이 공통으로 모아지는 부분의 이야기가 바로 로맨스 조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첫사랑, 부적응으로 시달리던 한 소녀의 일탈행위, 그리고 살던 곳을 떠난 뒤 마치 누구처럼 부나방 인생을 살며 혈육 한점 거두지 못한 인생. 이런 이야기가 과연 영화 한 편 만들만한 소재가 될까?


영화 속 주인공중 세 명은 똑같은 방식으로 자살을 결심하다 미수에 그친다. 로맨스 조, 초희, 그리고 화자이자 링커인 다방 종업원. 왼 손목에 훈장처럼 남아있는 칼자국. 낯설게 만난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발견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상흔은 아니다. 그럼 이야기는 누군가의 의도가 된다.


주인공이 바로 “누구다”라고 말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많이 카메라에 찍은 사람이 주인공이다라고 한다면 바로 그(그녀)다. 그리고 그녀(그)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장악하고 종결한다. 그(그녀)를 찾아내는 게임이 바로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방법이다.


홍상수 감독의 조연출 출신인 이광국 감독은 상당히 수완이 좋아 보였다. 쉽지 않은 서술구조와 편집, 거기에 스승을 빼닮은 짧게 치고 빠지는 해학담긴 유머까지. 거기에 홍 감독 영화에서 보이는 거친 영상을 배제하고 차분하고 꽉 찬 프레임까지 알차게 선사한다.  

 

 

 

 

 

 

 

 


로맨스 조 (2012)

Romance Joe 
8.9
감독
이광국
출연
김영필, 신동미, 이채은, 이다윗, 김동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15 분 |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