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화차 - 지옥행 완행열차는 우리앞에도 대기중이다

효준선생 2012. 3. 7. 00:17

 

 

 

 

사람은 죽는다. 누구는 꽃가마를 타고 극락으로, 누구는 불 수레(車)를 타고 지옥으로 보내진다. 스스로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것도 호사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지옥에 가기도 전에 불 맛을 제대로 봐야하다니, 화차는 바로 그 불 수레를 말한다. 일본 소설 화차를 한국의 현실에 맞게 각색해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주연의 영화 화차가 드디어 개봉한다.


이 영화의 앞부분을 보면서 만약 이 부분이 영상이 아니라 글이었다면 좀 빠르게 읽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을 정도로 템포가 느리다. 다음 페이지로 빨리 넘겨보고 싶을 정도로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시키지만, 배우들은 상당한 시간동안 사라진 여자를 찾는 탐문과정에 매몰된다. 그 사라진 여자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렇다고 누구처럼 시신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없기에 더욱 뒷 얘기가 궁금했던 것이다. 영화 화차의 전반부는 “사라진 사람찾기”에 주목하며 감질을 나게 했다.


당신은 당신이 맞나? 이런 질문에 간혹, 스스로를 감추고 다른 인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 큰 실수를 저질렀을때, 세상에 구속당하거나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큰 배신을 당했거나 나쁜 놈에게 쫒기는 삶을 살아야 했을때 제 이름을 버리고 홍길동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 분명히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이름이 촌스럽고 놀림감이 된다고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을 숨기고 싶어져 이름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언제적 이름을 원하시나요?


이름은 자신을 드러내는 정체성이다. 또한 사회구성원으로 자신의 포지션을 박아놓고 남들과 대등하게 살 수 있는 무기이자 또한 구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고 그녀의 이름이 가짜라고 한다면, 황당할 것이다. 그리고 찾을 것이다. 찾을 수 없어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배신감도, 걱정도 들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그럼 왜? 결혼까지 앞둔 여자는 사라졌을까? 자의로? 타인의 겁박에 의해? 영화 화차는 팔각 수레바퀴라도 달린 양 천천히, 그리고 달그락거리며 자신을 따라오면 안다고 다양한 추리를 펼쳐보였다.


그리고 드러나는 주변인물들의 증언과 물증들, 어찌나 추리력에 신통력이 있는지 잘도 맞추어나간다. 전직 경찰출신이라 그런 건 아니듯 하다. 뜻밖에 이 영화의 주요 話者는 동물병원 직원이다. 그녀의 입을 주목할 필요가 아주 많다. 이름을 감추고 산다는 건 한국에선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감출 수도 없는 듯 싶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죽지 않는다면 그 모습을 들어내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서운 얼굴 앞에선 반드시 각오를 해야할 터다. 그게 죽음일지라도.


이 영화의 숨겨진 화두는 “돈”이다. 일본 원작 소설에서도 당시의 거품경제하에서 돈의 노예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주변인물과 관계에서 한없이 추락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이 소설의 테마였다면 영화 화차에서도 결국은 나와는 상관없을 듯 싶었던 돈에 대한 압박과 구속이 한 인간을 어떻게 조직적으로 파멸시키는 지를 각성시키고 있었다. 미디어속에서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내 돈 쓰세요”라고 현혹하는 광고들. 당신 수중에 돈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 돈은 당신의 목숨값이 된다.


대사 중에 시간이 흘러 점점 커지는 게 거짓말이라고 했다. 하나 덧붙이자면 이자도 있다. 금융이 만들어 놓은 가장 이기적인 도구 이자, 돈에 현혹되어 “와이로”를 받다 짤린 경찰에, 돈을 갚지 못하는 아버지의 운명을 대신해야 하는 여자까지. 현대판 노예는 천생의 신분이나 敗戰의 노획물이 아니라 돈의 소유에 달려있다.


범죄 추리 스릴러의 장르에 맞게 뒤로 갈수록 액션과 추리, 그리고 스릴러적 요소가 짙어진다. 열심히 뛰어다니는 배역들의 당위성이 다소 희박한 게 옥의 티였지만 미스테리한 여자로 분하는 김민희로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소모적인 캐릭터로 잘 나왔다. 종반부 그녀가 헐벗은 채 혼자 보여준 판토마임과 같은 연기는 압권이다.    


영화 속에서 몇몇이 죽었다. 그들 중 화차에 실려 지옥행 완행열차를 탈 사람은 누구였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죽었어야 마땅한 사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건 죽은 사람에 대한 무례다. 화차는 여전히 우리 곁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다.

 

 

 

 

 

 

 

 


화차 (2012)

Helpless 
8.7
감독
변영주
출연
이선균, 김민희, 조성하, 김별, 이희준
정보
미스터리 | 한국 | 117 분 | 2012-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