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휴고 - 우린 쓸모 있는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

효준선생 2012. 3. 6. 01:47

 

 

 

 

1920년대 프랑스 파리의 한 기차역, 소년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장난감 가게 앞에서 서성거리다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과 불편한 조우를 한다. 이내 도둑으로 몰려 기차역 순찰경찰에게 쫒기는 신세가 되지만 소년은 그곳을 떠날 수 없다. 소년에게 지켜야할 로봇과 시계와 그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99년에 중국에서 서양경이라는 제목의 영화 한편을 보았다. 당시엔 블록버스터나 헐리웃 대작을 중국에서 보는 게 힘들었던 탓에 본토박이 영화였지만 주연이름 하나 보고 괜찮을 거라는 믿음으로 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내용인즉 1902년 즈음 서양 선교사가 들고 들어온 슬라이드를 구경한 어린 소년의 문화적 충격을 다룬 영화다. 쉽게 말해 헐리웃 키드의 일생인데, 그걸 지켜보는 나 역시도 벽에 비춰진 사진들이 연속동작을 취하며 놀라던 당시 중국인들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어린 시절 아이들에겐 할머니들의 옛날 이야기가 최고의 들을 거리이었고 조금 자라서는 텔레비전의 만화영화에 폭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다. 영화라는 매체 역시 훌륭한 이야기 전달꾼으로서의 역할을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혼자서, 혹은 부모님 손을 잡고서야만 갈 수 있는 곳인지라 어딘지 낯설고 익숙지 않은 그런 곳이었다. 그런 영화에 대한 아련한 추억들이 1920년대 파리에 살던 소년이라고 없지 말란 법은 없었으니, 영화 휴고는 주인공 소년의 이름이자 누구나 가지고 있던 영화에 대한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조르주 멜리어스는 이 영화를 만든 스코시즈 감독의 의중이 가장 많이 반영된 인물로 휴고는 다름아닌 감독 자신일거라는 확신이 든다. 멜리어스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찬 영화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닌 듯 한건, 주요 배경이 된 기차역, 그리고 시계, 미래를 연상케 하는 로봇등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휴고는 처음 장난감 가게 할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다. 게다가 짜증날 정도로 휴고가 가지고 있는 작은 수첩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 정도가 되면 어린아이들은 제 풀에 지쳐 금새 잊을 법하지만 휴고는 악착같이 그 그림이 담긴 수첩을 되찾으려고 애를 쓴다. 나중에 그 노인이 조르주 멜리어스임을 깨닫고는 놀라워하지만 그것인 일부였다. 소년 휴고에겐 아버지가 남긴 로봇인형을 작동시켜야한다는 사명감이 더 커보였다. 다시 말해 조르주 멜리어스라는 영화사에서 빼놓아서는 안될 인물을 찾는 것과 개인적인 일로 비춰지지만 자기 아버지와의 어떤 약속을 지켜내려는 소년과의 의식차이는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를 메꾸는 건 시계로 이미지화 된 흘러가는 시간이다. 조르주와 휴고 사이엔 길어봐야 20년 정도다. 그래서 그런지 휴고가 조르주의 작품을 대하면서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는 아직 영화가 주는 문화적 충격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 작품속에 보이는 한방 먹은 달의 이미지, 즉 로봇이 그려낸 그 그림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냈다는 후련함이 더 크게 보였다.


기차역에서 서식하다시피하는 건, 조르주 보다 영화의 창시자로 알려진 뤼미에르 형제에 대한 또 하나의 오마주다. 영화속 영화로 보여주는 기차 장면은 바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라는 실험적 작품의 일부다. 두 번이나 보여준 그 장면에서 영화보다 그 영화를 보며 놀라서 일어나 피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더 크게 작용한다. 어찌보면 현재의 3D영화의 시초인 셈이다.


휴고는 조르주가 데려다 키운 소녀에게 이런 말은 한다. “과거의 시간을 되집어 보는 건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로봇도, 시계도 다 쓸모가 있어야 하는 거지만 인간인 우리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 누구든 자신의 쓰임을 잃고 산다면 삶은 망가진 기계와 같은 거다”


휴고가 감독의 현신이라고 했을때 우리가 현재 접하는 스코시즈 감독은 휴고에게 조르주 멜리어스를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과 진배없다. 해서 요즘 관객들에게 자신이 여기는 영화에 대한 진실, 혹은 본령이 이렇습니다. 라는 일종의 영상 회고록이 아니었나 싶었다.


태엽은 전기동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감아만 주면 덜그럭 거리며 무엇인가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먹고 섭취하는 것을 운동 에너지로 바꿔 움직이고 사유한다. 우리가 태엽에 의존해 움직이는 로봇과 다른 점은 늘 능동적으로 외부와 접촉하고 받아들이고 만들어낸다는 점에 있다. 하지만 언젠가 태엽이 다 돌면 멈추는 로봇처럼 우리도 시간이 흐르면 그만 멈추어야 할 때가 온다. 소년 휴고가 그 시간의 시계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것, 어쩌면 언제까지나 영화의 이야기 속에서 살고픈 본능은 아니었을까. 지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휴고 (2012)

Hugo 
8
감독
마틴 스콜세지
출연
아사 버터필드, 클로이 그레이스 모레츠, 벤 킹슬리, 사챠 바론 코헨, 주드 로
정보
가족, 판타지 | 미국 | 125 분 | 2012-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