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치코와 리타 - 세월의 흔적속에 각인되어버린 사랑

효준선생 2011. 12. 27. 00:17

 

 

 

 

지구상엔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한국의 입장에선 쿠바만큼이나 먼 나라도 없을 듯 싶다. 한때는 경제원조가 이뤄지던 때도 있었지만 이데올로기에 의해 격리되어 심리적으로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나라 쿠바. 조금씩 훈풍이 불면서 이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쿠바가 영화속 모티프나 배경이 되는 영화들도 적지 않게 소개되고 있다.


송일곤 감독의 시간의 춤, 정호연 감독의 자서전적 이야기였던 쿠바의 연인, 그리고 하바나 블루스등이 있었다. 거기에 이번 제천국제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치코와 리타는 정극이 아닌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위에 열거한 영화들은 한국인 감독, 혹은 스페인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100% 쿠바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어깨너머라도 베일에 감춰져 있던 쿠바의 속살을 조금 들여가 본다는 것은 가보기 쉽지 않은 나라인 만큼 흥미롭다.


하바나의 소질있는 재즈피아니스트 치코, 무도회장에서 보컬리스트 리타를 만나 한 눈에 사랑에 빠졌고 둘은  함께 팀을 꾸려 연주와 노래를 부르며 연인처럼 생활한다. 그러던중 그녀의 상품성을 알아챈 미국인 론은 그녀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고 함께 세계의 중심지 뉴욕으로 떠나자고 한다. 치코 때문에 망설이던 리타는 자괴감에 시달리던 치코가 다른 여자와 밤을 지새는 것을 목격하고는 미국행 배에 오른다.


영화의 주제는 신파에 가깝다. 그런데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만화 영화는 자기 나름의 복식호흡을 준비하고 있었다. 1948년 쿠바는 정치적으로 이런 저런 정파들의 다툼과 미국으로부터의 원조에 기대어 풍족하지 못한 생활환경이었다. 사람들은 곤궁하고 힘든 현실을 잊고자 음악에서 위안을 삼았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과 수많은 남미 라틴 댄스들은 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 많다.


이 영화에서도 쿠바의 클럽을 조명하며 룸바니, 살사니, 스윙 같은 음악을 선보였으며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주로 재즈와 블루스로 바뀐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이 영화의 두 번째로 큰 매력이자 들을 거리이며, 비록 밋밋한 2D주인공들의 입을 빌렸지만 귀에 들리는 음악은 최고였다.


두 번째 이야기는 뉴욕으로 옮겨간다. 제 아무리 세상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라고 해도 2차 세계 대전을 막 끝낸 참이라 뉴욕의 거리 풍경은 생각보다 심심했다. 그런 마당에 새로운 가요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리타의 음악은 수많은 뉴요커들을 홀렸을 법하다. 남자를 쿠바에 두고 온 여자에겐 사랑보다 인생의 성공뿐 이었을까. 음악 영화를 표방하지만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도 만화영화라고 보기에 진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사랑을 찾아 부나방처럼 뉴욕을 떠돌며 가까워지기엔 너무 먼 당신을 읖조리는 치코와 리타.


이 영화가 청춘들의 그저 그런 러브스토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오랜세월이 흘러 허름한 모텔에서 다시 해후하는 장면, 그리고 공산혁명이 들어선 쿠바에서의 라틴음악에 대한 멸시등이 어울어지면 가슴 뭉클한 인생역정을 읽을 수 있었다.


다 늙어서 기력도 다 쇠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정열적인 키스신, 역시 라틴 특유의 열정은 식지 않는 법인 모양이다. 어느새 감정선을 내준 채 들여다 보는 스크린 위로 알게 모르게 THE END라는 자막이 무심하게 떠올랐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치코와 리타 (2012)

Chico & R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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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하비에르 마리스칼, 페르난도 트루에바, 토노 에란도
출연
에만 소르 오냐, 리마나 메네세스, 마리오 구에라, 에스트렐라 모렌테
정보
애니메이션 | 스페인, 영국 | 93 분 | 2012-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