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마이웨이 - 각자의 길에서 죽도록 살려고 하다

효준선생 2011. 12. 28. 00:37

 

 

 

 

1948년 런던 올림픽 마라톤 대회, 결승선을 앞두고 선수 하나가 골인지점을 향해 라스트 스퍼트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 선수의 뒷태를 비추고 있는데 백넘버의 이름이 주인공 김준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장동건의 모습이 아니다. 그는 누구인가?


경성이라고 부르던 곳에 살던 식민지 신민들은 제 아무리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어도 가슴팍에 제 나라 국기를 달고 대표로 나갈 수 없다. 오히려 전장에 끌려나가 총알받이로 개죽음이나 당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딱 마주친 두 사람, 한 명은 지배국의 국민이며 또 하나는 식민지에서 살고 있는 백성이다. 둘다 뜀박질 하나만큼은 조선팔도에서 제일 간다고 소문이 났고 어릴때부터의 경쟁심은 서로에게 이겨야만 하는 상대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장에서 상관과 부하의 처지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화 마이웨이는 전체적으로 아주 흡인력있는 영화다. 솜씨 좋은 전쟁장면은 숨을 함부로 내쉴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저런 장면은 어떻게 찍어냈을까 하며 영화 스토리보다 제작과정의 뒷 이야기가 더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리뷰어들로부터 약간의 비딱한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보였다. 첫째, 전쟁장면은 우월하지만 그 안의 드라마가 너무 약하며, 민족주의가 횡행하는 정도가 심하다. 둘째, 우리의 주인공 장동건의 캐릭터는 밋밋한 반면 일본배우 오다기리 조의 캐릭터는 왜 훨씬 굴곡이 있고 멋있게 나왔냐, 추가로 거의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판빙빙의 아쉬운 조기 사망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까? 영화를 다보고 난 뒤 소감은 늘 비슷했다. “반드시 보고자 하는 영화에 관한한 영화보기전 절대로 남의 부정적 리뷰는 보지말자.” 영화속 드라마가 약하다고 하지만 오프닝 부분인 소년시절, 중학생 시절을 있는 둥 없는 둥 했던 것이 더욱 좋았으며 중간 중간 김준식과 함께 끌려간 조선의 징용병들의 이야기로도 충분해 보였다. 전쟁 영화의 가장 빈번한 클리셰인 다른 병사들 다 자는 동안 주인공 둘이 모닥불 켜놓고 과거 회상이나 해대는 장면을 극소화 한 점, 늘 새로운 발견이라고 추켜 세울만한 안똔 김인권의 열연은 최소한 다섯 사람이 가진 드라마를 한 방에 농축해 놓았다고 본다. 안똔의 캐릭터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주인공을 위한 배려심, 또 살기위해 권력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완장을 찼고 榮達을 향한 행동들이 격동기를 살다가 우리 할아버지들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준식의 캐릭터는 사실 똘똘해 보이지는 않았다. 죽음의 현장에서도 그는 살기 위해 엄청난 모험을 하지는 않았다. 주워진 대로만 하다보니 살았고 그러다 목숨도 부지하기 어려웠던 것뿐이다. 그가 영악한 모습으로 러닝타임 내내 달렸다면 안똔의 캐릭터와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오히려 악한의 모습에서 나중엔 무기력한 모습을 변해버린 타츠오의 모습이 나중엔 더 씁쓸해보였다. 고지전의 “2초”를 연상케하는, 판빙빙이 맡은 쉬라이 캐릭터도 당시 전황에서 조선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마저도 이 광란의 피바다에서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편법적 캐릭터라고 보면 무방하다. 만약 쉬라이가 끝까지 살아남아 나중에 김준식이나 타츠오와 뽀뽀라도 하고 끝내길 바란다면 헛헛한 헐리웃 공상과학 액션 블록버스터와 무엇이 다르겠나. 또 특정 국가의 영화를 보고 와서 가장 흔히 듣는 말 중에 민족주의가 심해서 못 봐주겠다고 말하는데 그 시대를 극적으로 다루기 위해 집어넣은 민족주의가 그렇게 심란한가. 이 영화에서 포로로 잡힌 타츠오에게 소련군인 앞에서 전향하겠다는 마음을 보여주려면 일장기를 밟고 지나가라고 강요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배우 오다기리 조에게 너무 가혹한 주문이 아니었나 싶었다. 만약 중국이나 일본영화에 캐스팅된 한국배우에게 영화 속 가정이지만 태극기를 밟고 가게하는 장면을 찍게 했다면 영화라는 가상의 틀을 감안하고도 현실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국적을 달리하며 출신은 다르지만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자연인으로서의 병사들은 오히려 민족주의와는 한참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이 영화의 단점도 적지 않다. 점프컷에서 등장인물들의 만남과 헤어짐이 너무 작위적이고 주인공들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생존이라는 선물을 손쉽게 부여하는 것 같아 극적인 효과가 떨어진 건 사실이다.


아무도 원치 않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 일본, 소련, 독일(극중에선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연합군까지 포함)의 무명 군졸로 살아가다 운명을 달리한 인물들이 뿜어내는 열기엔 많은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미술(세트)과 음악(엔딩 크리딧을 장식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명품 목소리를 왜들 안듣고 나가는지) 스탭의 노고도 치하하고 싶다. 영화를 단순히 투자비용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우리도 돈을 쓴 만큼 볼거리를 뽑아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무려 1천만명이나 이 영화를 봐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만으로 이 영화를 재단하기엔 영화를 보는 내내 간직했던 먹먹한 감수성이 아깝다.


제목 마이웨이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길은 김준식이나 타츠오의 길이 아니고 혹자가 말하는 감독의 길도 아니다. 물론 그들 중 어느 한 명의 길도 되겠지만 우리 모두의 길이 아닐까 싶었다. 배우는 좋은 연기를 위한 길위에서, 감독은 영화제작의 길위에서, 그리고 영화를 본 나 같은 관객은 극장문을 나서 현실로 돌아와 먹고 사는 길위에서 또 내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노르망디 언덕위에서 죽지 않기 위해 달리는 준식과 타츠오처럼.

 

 

 

 

 

 

 

 

 


마이웨이 (2011)

My Way 
6
감독
강제규
출연
장동건, 오다기리 조, 판빙빙, 김인권, 김희원
정보
드라마 | 한국 | 137 분 | 201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