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S중독자의 고백 - 도화살을 없애면 자기애만 남는다

효준선생 2011. 12. 24. 01:37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가 서른을 목전에 둔 손녀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여자에겐 결혼과 매춘은 동일하다고, 남자가 밝히는 건 남자다움이고 여자가 밝히는 건 헤프다는 이야기다. 이런 도발적인 이야기에 흥분할 사람 결코 적지 않지만 영화 S중독자의 고백에선 상당히 일리있는 말처럼 부연설명된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남자와 침대위에서 정사를 나눈다. 황홀한 듯 그녀의 입에선 이게 바로 오르가즘이라는 말을 내뱉듯 몸서리를 친다. 그런데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이윽고 남자는 떠난다. 아주, “넌 섹스만 너무 밝힌다.”며.


첫경험은 15살, 그리고 14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나름 잘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늘씬한 키에 스패니시 우먼 답게 뚜렷한 이목구비가 모델스럽다. 그러나 그녀는 혼자다. 마음속으로는 늘 남자를 찾아나서지만 그렇다고 거리로 나갈 수는 없다. 용기도 없고 그건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생각을 한다. 서성이던 그녀 앞에 나타난 자못 멋진 남자, 돈도 매너도 있어보여 둘은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녀에겐 상처뿐이다.


사랑을 쟁취했다고 생각한 뒤의 남자의 본 모습이라도 되는양 거칠다. 그리고 다시 그럴리 없다며 빈다. 가식적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 상투적이다. 알코올 홀리커의 전형이다. 그녀의 사랑은 더 이상 그에게서 찾을 수 없다. 또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남자는 떠난다. 그녀의 최후의 선택은 나락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아를 찾기 위한 최후의 선택을 한다.


이 영화, 매우 에로틱하다. 남자와 여자의 음부가 스쳐지나듯 보여진다. 어설픈 모자이크도 없다. 그런데도 추하다기 보다 굉장히 예술적이다. 포르노와 예술영화의 경계선에 춤을 춘다. 성애와 관련된 시도가 다분하다. SM, 마스터베이션, 성기구, 구강성교, 그리고 스리섬을 연상케 하는 시도와 대사가 난무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걸 소개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녀의 성적 욕구와 함께 활활 불타오르는 작용과 혹은 반작용을 한다.


마치 성적욕구에 중독된 것처럼 나오지만 그녀가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로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을 때였다. 다시말해 그녀에게 성애는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그게 소멸되는 순간 그녀의 성적 흥분도는 급격하게 사라지고 만다. 그녀가 혼자서 느끼는 장면은 아름답다. 반대로 사랑이 아니라고 느낀 뒤의 반응은 그만큼 격렬하다. 그녀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향기로 정의한다. 갓 깎아낸 풀잎 냄새, 지중해 바닷가 냄새, 쵸코렛 냄새등등. 극히 에로틱하다. 남자는 시각에 약하고 여자는 분위기와 후각에 약하다는 말을 증거하는 모양이다.


그녀가 수렁속에서 간신히 헤쳐나오는 계기는 그다지 영악해보이지 않는다. 장애인 손님에게서 들은 警戒의 말들, 별거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꿈에서나 꾸어 볼 가치있는 것들. 그녀는 의미없이 소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가 거울에 비춰진 몇 십년 뒤의 자화상과 함께 서있다. 추레하다. 결코 아름답게 늙지 않았다.


할머니가 그녀에게 말한 이야기들이 둥실 떠다닌다. 젊을 때 즐기며 살라고. 여자에게 인생을 즐기라는 말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의미하지만 할머니의 의도는 분명 그런게 아닐 것이다. 비가 내린다. 마치 득도라도 한 스님처럼 그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중얼거린다. 자신은 인어요, 요정이라고. 결론은 자기애에 빠진 것일까.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코 상대방에게 기대서는 안될까 믿음이 변하는 순간, 사랑했던 연인은 괴물로 변한다는 교훈이 영화 전편에서 옥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