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래빗 홀 - 상실과 결손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느낌

효준선생 2011. 12. 20. 01:15

 

 

 

 

 

부부에게 신혼의 단꿈이 사라지고 나면 이젠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중심으로 생활은 돌아간다. 아이를 교집합으로 서먹해진 부부는 소통을 하게 된다. 그게 결혼의 또다른 윤활유라고 믿으며 제2막은 오른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로 완충재 역할을 하던 아이가 죽고나자 부부 사이엔 퍽퍽함만이 남는다.


영화 래빗홀은 상황 심리극이었다. 아이가 있던 자리의 소멸 그리고 남겨진 상실감을 치유하는 방식을 보여줌으로써 남겨진 자들에게 어떤 방식의 삶을 만들어 나갈지 보여주는 일종의 테스팅 드라마였다.


오랫동안 살을 맞대며 살아왔을 부부지만 이후의 삶에 대한 처신과 대응이 극적이라고 할 정도로 달라보였다. 아이의 흔적을 싹 치워야만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마음속 한 켠에 절대 잊을 수 없다며 고뇌하는 아내, 아이의 흔적이 남겨진 물건들을 그대로 놓아 둔채로 숨결이라도 느끼고 싶어하는 남편, 사고의 빌미를 제공한 개까지도 없애자 그냥 두자며 실랑이를 벌이고, 심지어 살고 있던 집까지 팔려고 하는 부부의 모습은 흔해 보이면서도 안타까운 현실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런 류의 드라마를 신파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이 영화의 진행은 결코 신파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동기부여가 확실하고 잘 짜인 구조를 통해 심리적 묘사에 상당히 주안점을 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 초반부 남편보다 아내는 더욱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자식을 잃은 부모 모임에 나가서 타인의 감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는다든지, 아이의 옷가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갓 임신한 동생에게 건네주다 면박을 받는다든지, 종교에 의지해보라는 충고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결정적인 장면 하나를 덧붙이자면 마트에서 과일 젤리를 사달라는 아이의 보챔을 무시하는 낯선 아줌마에게 뺨을 때리는 장면이다. 그 아줌마 왈, “당신, 애 안키우지? 그러니 아이에게 뭘 주지 말아야 하는지 알 턱이 없지”라는 말을 들은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남편의 경우는 위태로워 보였다. 모임에서 만난 동양계 여인(한국계인 산드라 오)와 의기투합해 마약을 하고 심지어 외도의 분위기까지 조성했다. 이들 부부에게 위기란 무엇일까 8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아이의 부재가 가져온 공허감은 결국 이들 부부를 흔들었고, 그 적절한 치유방식을 찾지 못한 채 자기가 더 힘들다며 투정을 하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부부가 함께 치유방법을 공유할 수는 없는지, 세상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또 하나의 케이스가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든다.


아내의 엄마에겐 마찬가지의 슬픔이 있다. 젊은 시절 마약중독으로 삶을 마감한 아들, 즉, 여자의 오빠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독특한 부분인데, 자신의 오빠임에도 여자는 오빠의 부재엔 혹독한 평가를 내리며 엄마가 겪었을 자신과 똑같은 고뇌에 대해서는 짐짓 모르는 척 해버린다. 이미 초로의 나이가 된 엄마는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딸의 신세에 동정을 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에 대해선 강력하게 “나도 너 못지 않은 자식 상실의 아픔이 있어”라고 말하지 못한다.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을 겪게 된다. 모두 같은 시에 태어나 같은 시에 죽을 수 없는 운명이기에 먼저 혹은 나중에 세상을 떠나면 가는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에겐 고통이자 충격이 된다. 그래도 영화는 이들 부부의 선택에 손을 들어 주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의 부딪침. 심지어 가해자였던 남자아이까지 용서를 하는 장면에 이르면 과연 인간의 분노엔 한계가 있긴 하는 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제목으로 나온 래빗 홀은 남자아이가 그린 만화책 속에 등장하는 “미지의 세계로 통하는 구멍”이라는 뜻이다. 토끼굴이라는 의미가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일견 보편 타당한 가치를 가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상실과 결손의 시절을 보내고 치유와 화합이 남은 결과, 이 겨울에 잘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비슷한 경우를 겪는 사람들에게 안위의 손길이 되길 바라며. 

 

 

 

 

 

 

 


래빗 홀 (2011)

Rabbit Hole 
9.2
감독
존 카메론 미첼
출연
니콜 키드먼, 아론 에크하트, 다이앤 위스트, 마일스 텔러, 타미 브랜차드
정보
드라마 | 미국 | 91 분 | 201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