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퍼펙트 게임 - 에이스를 키운 것은 8할이 승부욕

효준선생 2011. 12. 17. 01:21

 

 

 

 

영화 퍼펙트 게임을 보기 전, 얼마나 야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옆 자리에 앉은 스무살 안쪽의 젊은 친구에게, 이미 프로야구가 시작된 지 30년이나 되었고 이 영화의 배경은 1987년, 그들은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때인데, 그들이 골수 야구팬들에게 레전드라는 소리를 듣는 최동원, 선동열의 아우라를 조금이라도 이해는 하는 걸까


미리 말해두는 편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때부터 해태 타이거즈팬이었다. 프랜차이즈 출신도 아니고 해태에 근무하는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태제과 과자를 좋아했고 그 당시에 내가 알고 야구선수란게 김봉연, 김일권 정도였다. 81년 세상이 군홧발에 짓밟히고 간신히 숨을 쉴 것 같았던 이듬해 프로야구는 사람들에게 생경하면서도 정치가 아닌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오락거리로 던져졌다. 개막전 만화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경기가 펼쳐졌고 그로인해 다음날 사람들은 “어제 프로야구 보았냐”로 일요일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물론 나도 그 경기를 보았고 막연하게 경기도 중계하지 않았던 해태팬이 되었다.


해태는 많이 부족한 팀이었다. 초창기 선수부족에 여기저기서 선수를 끌어모았고 그중에 우리 중학교에 왔던 교생선생님도 들어있었다. 그러니 그 어떤 팀보다 관심이 갔고 어린 마음에 잘되길 무척 바랬다. 그리고 선동열, 누가 뭐래도 한국 야구에서 불세출의 스타는 그다. 비록 영화 퍼펙트 게임의 주류는 최동원으로 보이지만 내겐 그만한 스타는 없었다. 영화속 배경이 되는 1987년 5월은 지지 않는 태양의 마지막 몸부림과 떠오르는 태양의 본격적인 포효였다고 나는 확신한다.


영화는 사실에 기인하지만 몇 가지 픽션은 감정선을 자극하는 신파처럼 보여졌다. 만년 2군 포수에 단 한번도 1군에서 뛰어 본 적이 없는 박만수가 그 중요한 경기에서 9회말 투아웃 상황에서 동점홈런을 친다든지, 최동원의 고등학교 스승이자 롯데 동료선수의 아버지의 죽음이 팀에 끼치는 보이지 않는 힘등이 그러하다. 당일의 경기 내용을 곧이곧대로 보아야 한다는 강박증만 아니라면 울컥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이 두 장면은 나쁘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은 극단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출신지와 출신 대학과 현재 몸담고 있는 팀이 라이벌 구도로 되어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삶에 대한 자세였다. 매사에 꼼꼼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최동원, 시합을 위해 술 담배도 거의 하지 않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주변에 질시하는 선수들도 있었다는 설명, 반대로 술 먹고 마운드에 올라도 승리만 해내면 된다며 뻐기던 선동열의 캐릭터만 보면 이 영화에서 해태 김응룡 감독이 꾸짖었듯 선동열이 최동원에게 배워야 하는 덕목은 한 수 위의 것이었다.


한 경기에서 15이닝을 연속으로 던지고 그 던진 공이 200여개를 넘겼던, 지금 시스템하에서는 선수 혹사라는 말이 나올 수준이지만 선수가 태부족이고 선발, 셋업, 마무리라는 투수 분업체계가 없던 당시엔 이런 상황이 드문 게 아니었다. 영화 속에선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쟁심이 모종의 권력에 의해 조종되었다는 가설을 심어놓았지만 그건 이 두 명의 영웅에 대한 모독처럼 보여졌다. 그 경기, 그 둘은 왜 그렇게 승부에 집착했을까. 서로를 꺾어야만 하는 라이벌로 생각했다고 해도 다음 경기에서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과론적이지만 그 경기 이후 다시는 두 선수의 대결을 볼 수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는 그 날의 경기 장면을 박진감있게 심어 놓았다. 선수들은 뛰고 관객은 공하나 하나에 집중을 했다. 승부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무승부였다. 승자는 없었지만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던 그 당시의 선수들, 경기모습, 배경으로 등장하는 올드한 아이템들이 내겐 기분좋은 회상이었다. 두 영웅 중 한 명은 이제 세상에 없다. 그리고 남은 영웅은 내 페이보릿 팀인 타이거즈의 감독으로 왔다. 내년엔 또 어떤 파이팅을 보여줄지 야구팬은 벌써부터 설렌다.

 

 

 

 

 

 

 


퍼펙트 게임 (2011)

9
감독
박희곤
출연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마동석, 조진웅
정보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11-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