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날한 스파이라고 연정을 품지 말라는 법 없다. 이웃집 여자를 흠모하고 있으나 일은 쉴새없이 그를 다그치고 이웃집 여자의 세 자녀들의 눈빛이 날카롭다 못해 위축이 된다. 스파이라고 세상 모든 일이 제 마음 같지 않다.
영화 스파이 넥스트 도어는 성룡의 오랜만의 외출이다. 중국을 벗어나 미국의 배우들과 이런 저런 스토리를 만들어가는데 몰두하고 있는 그가 선택한 이번 영화는 어찌보면 자신의 현 처지와 닮아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영화 오프닝 장면 자체가 성룡이 지금까지 찍었던 영화속 액션장면들이 마치 스스로를 오마주하듯 흘러나왔다.
성룡은 유독 미국 정보기관 CIA와 관계가 많았다. 심지어 그가 출연한 영화 제목에 그 이름이 들어간 작품도 있었다. 이번에도 겉으로는 볼펜장사라고 말하면서도 알고보니 조직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엘리트 요원으로 등장한다. 비록 중국에서 미국으로 파견된 신분이지만 낼 모레 은퇴할 나이의 그를 놓고 싶어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영화는 정보 요원의 사생활과 끝까지 그를 울궈 먹으려는 세력, 그리고 미국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악의 축 이미지를 벗지 못하는 러시안의 욕심이 어울렁 더울렁 묶여있는 내용이다. 성룡 영화가 늘 그렇듯 제시하는 주제는 무거운 듯 싶지만 그걸 풀어가는 형식은 한 없이 가벼웠다. 이 영화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석유를 없애는 물질을 개발해낸 러시안 일당들. 자기들의 석유만 남겨두면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무시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철없어 보이는 프로젝트의 주인공들.
강렬한 러시아식 악센트의 영어를 구사하는 그들의 보스가 표현해내는 패션센스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럼 성룡은 이들과만 싸우면 될까 그렇지 않다. 백인여성과의 혼담이 오가는 사이 그녀의 세명의 아이들에게도 점수를 따야하는 바쁜 상황이다. 악덕 마인드의 러시안 장사꾼과 미국의 틴에이져들 사이에서 노구를 이끌고 부지런히 움직여주시는 성룡의 액션은 여전했다.
혈연만이 아니라 지금 모여사는 우리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가족이 될 수 있을까를 타진하는 영화, 그래서 첫째딸의 아픔도, 자신의 신분을 숨겨야 하는 성룡의 처지도 분명 이해가 되었다. 또 딸과 달리 남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아는 둘째도 새 아빠에게는 좋은 파트너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정의를 되새겨 보고 여전히 전세계 악당들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성룡 특유의 액션이 잔웃음을 주는 영화였다. 자기가 스파이라며 보여주는몇 가지 아이템은 신기롭게 보였고, 이제 이순을 바라보는 성룡의 힘을 잔뜩 뺀 연기도 볼 만했다. 혹자는 이 영화가 식상하고 어설프다고 하지만 성룡 영화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면 그건 나만의 과장일까.
스파이 넥스트 도어 (2011)
The Spy Next Door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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