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havre는 노르망디의 작은 하역항이 있는 마을 이름이다. 항구는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물자가 흘러들고 나는 곳이기에 언제 어디서 무엇이 들어오고 또 나가는지 모두 알기 어렵다. 이 항구도시에서 벌어진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더불어 산다는 것, 그리고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영화 르 아브르는 자못 인류애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낯설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초로의 남자가 구두닦이 통을 들고 사람의 왕래가 많은 거리에서 손님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옆엔 베트남에서 온 젊은 남자가 추레한 몰골로 지켜보고 있다. 이들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좀 없어보이는데 라는 생각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남자의 행각은 점점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동네 빵집에서 바게트 빵을 외상으로 그냥 들고 나오거나 이웃집 채소가게 주인은 그를 보고는 일찌감치 셔터문을 잠궈버린다. 재미있는 장면은 번듯한 구둣가게 앞에서 구두를 닦다 가게 종업원에게 구두통을 차이는 장면이었다. 그때 남자는 중얼거린다. “동종업계 사람들끼리 돕고 삽시다” 상생을 말하고 싶어나보다.
집에 돌아오면 더 안쓰럽다. 남자는 버석거리는 바게트 빵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아내는 남편이 벌어온 푼돈을 빈 깡통에 모아둔다. 그리고는 이내 그 요기꺼리마저 사양한 채 주린 배를 움켜쥔다. 여기까지의 모습만 보면 사회 극빈층의 하루살이 인생을 그린 씁쓸한 서민일기처럼 보이지만 이내 활력을 띠기 시작하는 것은 남자 마르셀이 잘못 밀항선을 타는 바람에 목적지인 런던이 아닌 프랑스로 온 아프리카 소년 이드리사와 만나면서부터다.
프랑스는 그 어떤 나라보다 이민족과 유색인종의 유입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특히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던 시절이 길었던 탓에 그곳으로부터 들어오는 사람들을 막을 길이 별로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최근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팀엔 순수 프랑스 혈통의 선수는 거의 찾을 길이 없다. 이렇게 이민족에 대해 교류가 많은 프랑스임에도 그들에 대한 유입억제책은 상당히 강력해 보였다. 영화속 모네 형사로 대변되는 공권력은 현장에서 도망친 흑인 소년 이드리사를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우연처럼 만난 마르셀과 이드리사는 비록 오래 머물지 않을 작은 항구도시에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에 대해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셈법을 제시해 놓았다. 병을 얻어 병원에서 요양중인 아내가 마치 다친 제비 다리를 고쳐준 흥부가 박씨를 받듯, 그런 판타지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쉽게 믿을 수 없는 장치임에도 훈훈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다. 진심을 다해서 사회적 약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겠냐는 시선이다.
이들 부부에게 깡통에 모아둔 돈은 그들에겐 전재산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마르셀은 아낌어 털어 이드리사의 런던행에 보태는 장면을 보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란 저런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재단을 만들어 전 재산을 거기에 묶어두고 친구와 아들에게 관리를 맡기는 행태를 두고 기부를 했네 마네 하는 모습을 보이는 오늘이기에 가진 것 없이 살면서도 어찌 저런 마음 씀씀이를 보일 수 있을까 싶었다.
진심이면 하늘도 움직인다고 아내의 건강해진 모습, 그리고 그렇게 집요하게 아이를 쫒아다니던 모네형사의 마지막 반전을 보면서, 영화 르 아브르는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해답을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겨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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