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창피해 - 사랑은 상대가 행복한거에요

효준선생 2011. 12. 2. 01:52

 

 

 

 

어느 밥집, 여자는 거칠어 보이는 일꾼들 사이에서 혼자 순두부백반을 시킨다. 적응이 잘 안되는 지 주위의 눈치를 본다. 하지만 남자들도 다들 혼자 밥을 시켜먹는다. 조선족으로 보이는 밥집 여자에게 농짓거리를 하다가도 이내 머쓱해 한다. 밥집 유리창 너머로 한 사내가 밥집 여자에게 손짓을 한다. 잠시 나갔다 온 그녀, 주인에게 남편이란다. 밥이라도 한끼 먹고가라지 라는 주인에게 “창피해서”라며 고개를 조아린다. 이 대화를 등뒤로 듣던 빨간 숄을 걸친 여자는 무언가 떠오르는 듯 발그레진 얼굴로 그제서야 밥술을 입으로 가져간다.


영화 창피해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성 동성애 코드가 다분하다며 핑크빛 분위기를 물씬내는 포스터가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는 사회 통념적 관계에 대해 이런 저런 해부의 메스를 가하는 일종의 사회의학적 실험극처럼 보였다. 극단적 상업영화의 기승전결 구조를 버리고 미술대생의 그림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쫒아가는 플래시백을 차용하는데 그 안의 이야기 역시 완벽한 앞뒤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마치 신화속 이야기의 한토막을 한다. 자아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엄마, 스스로를 자해하며 목숨을 끊는다. 그런데 그 여자의 뱃속의 아기는 엄마의 죽음이후에도 숨을 쉰다. 살고자 하는 강렬한 본능인 셈이다. 그 아기가 세상 빛을 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아기의 성장 이후 이야기가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거라고 믿지도 않는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여자는 바닷속을 유영한다. 푸른 바다는 엄마의 자궁안이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않는 상태에서 갑자기 발버둥을 친다. 역시 살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는 미술대 교수가 만들어낸 이야기이자 영화 속 교수가 만드려는 작품의 소재이자 영화 창피해의 부분적인 테마가 된다.


영화 창피해는 여자 영화다. 화자들은 모두 여자다. 그래서인지 모성에 대해 상당히 집착을 한다. 깨지기 쉬워 보이는 그 무엇을 남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두 명의 지우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보여주는 정체성, 둘다 여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그 중 한명에게선 제3의 성을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두 명의 여자가 보여주는 동성애 장면도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어둔 밤 오지도 않는 버스 정류장에서 달겨들듯입맞춤을 하는 또 한명의 지우에게선 엄마의 젖을 탐닉하는 아기의 모습도 보였다.

대체 그녀는 누구인가. 산사에서 홀로 살고 있는 처사에게 속살을 보이고도 빙긋이 웃는 그녀, 지하철 안에서 소매치기를 하다 걸려 도망을 치면서도 전혀 두려워 하거나 무서워 하지도 않는 그녀, 수갑을 찬 채 여자 둘이 누워 있는 공간에서 한 남자와 관계를 하고 또 그 남자의 아이를 낳겠다는 그녀. 한 명의 캐릭터가 이토록 다양하게 선을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그녀는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미술대 교수와 학생, 그리고 누드모델로 나선 여자와 그녀가 말하는 또 하나의 여자. 이들은 어쩌면 같은 병을 앓고 서로를 도닥여주는 관계일 수도 있다. 젠더를 따지기 전에 그냥 사람으로, 아슬 아슬한 장면 몇 개를 걷어내면 이 영화는 늘 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환부를 도려내듯, 또는 사회적으로 주어진 1, 2의 관계를 비틀어내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과의 그렇고 그런 관계”와는 또다른 관계의 재정립을 모색해 본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야기 전개가 생각과는 좀 다르게 진행되어 낯설지만 애를 쓰듯 뽑아낸 여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김효진과 김꽃비 커플의 아이컨택은 매우 귀여워 보여 다행이었다.  

 

 

 

 

 

 

 

 

 

 


창피해 (2011)

Life is peachy 
9.3
감독
김수현
출연
김효진, 김꽃비, 김상현, 서현진, 최민용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11 분 | 201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