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핑크 - 내 인생에 언제 분홍빛이었던 적이 있었나

효준선생 2011. 10. 23. 00:11

 

 

 

 

군산 앞바다 상선이 정박하는 신항 옆으로 조각배들이 들고 났을 구항 근처에 컨테이너로 만든 작은 밥집이 있다. 바닷가 근처인지라 생선구이에 왕대포를 취급하는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다들 이웃이다.  외지인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그곳을 찾은 서른 즈음의 여자, 행색과 달리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람들은 그곳을 핑크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간판이 있는 것도 핑크와 어울릴 만한 메뉴를 취급하는 것도 아니다. 도심 이면도로 안쪽의 유흥주점의 이름같기도 하고 홍등가에 내걸리는 그 홍등의 이름 같기도 하다. 새로 온 여자를 맞는 주인 여자도 시름겨워 하기는 매 한가지다. 이들은 누구인가


영화 핑크는 중의적인 미쟝센과 관찰자적 시점을 사용해 구체적으로 사건을 기록하고 전개하지 않는다. 멀리 끼룩끼룩 바닷새가 날면 그게 뭔가를 암시하고 좁은 골목길에 느닷없이 안개가 피어오르면 순탄치 않은 과거의 편린을 의미하기도 한다. 난데없이 기타를 맨 청년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지 않나, 두 명의 여배우는 어렵사리 나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주인공 수진에겐 어려서 아버지로부터의 성적착취에 시달린 흔적을 갖고 산다. 그녀의 행동에선 아직도 그 상처로 인해 사람 사이의 사람이 되지못한 채 유리되어 부유하는 것 같아 보인다. 식당 여사장, 50대 중반의 그녀는 장애인 아들과 살며 핑크가 조만간 철거된다는 사실, (실제로는 그 이상의 트라우마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로 힘겨운 나날이다.


그런 이유로 핑크에 모인 사람들은 늘 주위의 안위를 묻고 또 하릴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신산한 하루 하루를 보낸다. 영화는 기승전결이라는 공식을 포기하고 등장인물의 느릿한 일상을 따라 다닐뿐이다. 점점 대사량이 줄어드는 배우들. 입보다 눈이 더 주목된다. 그들이 쳐다보는 곳은 어딜까. 알고보니 그들의 시선이 멈추고는 곳은 바다쪽이다. 사람들이 사는 시끄러운 육지가 아닌 바다쪽을 응시한다.


독립영화에서 바닷가의 폐가전은 하나의 독특한 사유인 모양이다. 얼마전 모 영화에서도 버려진 냉장고에 갇힌 에피소드가 등장했는데 이 영화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철지난 군산 앞바다의 쓸쓸함이 에스프레소 만큼이나 진하다. 한때는 절정의 레드였던 때도 있었던 인생살이, 이제 희석되고 퇴락하여 분홍으로 퇴색된 그들의 삶, 강산에가 부르는 넋두리같은 엔딩곡을 감상하다 보면 처연해짐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핑크 (2011)

Pink 
9.7
감독
전수일
출연
이승연, 서갑숙, 이원종, 강산에
정보
드라마 | 한국 | 97 분 | 201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