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슬리핑 뷰티 - 누가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나

효준선생 2011. 10. 19. 00:40

 

 

 

 

 

영화 슬리핑 뷰티의 첫 장면은 생동성 실험을 하려는 한 여성을 비추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복사 아르바이트, 카페 종업원등. 루시는 대학생이다. 수업시간을 제외하면 늘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등록금을 충당한다. 그녀 가족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친구 집에 얹혀살며 눈칫밥을 먹지만 나름 당차보이기까지 한다.


88만원 세대가 이 시대 젊은 청춘을 아우르는 대명사가 된 지도 여러 해 지났다. 자조적으로 44만원 세대라는 신조어도 따라 등장한 것을 보면 사회 진출의 장벽은 점점 놓고 가진자들이 걷어 차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는 더 이상 찾기 어려워 보이는 이즈음이다. 호주의 젊은 여대생 루시에게도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들어 맞는다. 그녀에게 돈을 번다는 건, 가진 자의 주머니속에서 빼내는 것인데, 그들이 호락호락 내줄 리 없다. 인생 살날 얼마 남지 않은 소위 기득권, 상류층 남자들에게 루시처럼 어리고 가녀린 여대생은 그저 성적 노리개에 불과했다.


극소수 어떤 사람의 일탈이라고만 말하기 어려운 실정임은 인정하고 가야 한다. 가진 게 없기에, 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방법은 제 몸뚱아리 하나뿐이다 라고 고함을 쳤을때 그 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는가. 영화 슬리핑 뷰티는 섹슈얼 미스테리물이다. 배경음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이 나타날때는 정적인 모습에서 대사를 하거나 마치 극세사 슬리퍼라도 신은듯, 사위는 침묵이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민폐가 될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겠다. 전작 써커펀치에서 베이비 돌이라는 기상천외한 캐릭터로 등장했던 에밀리 브라우닝은 말 그대로 몸 사리지 않은 연기를 펼쳐보였다. 나이와 상관없다면 단연코 영화제 여우주연상 감이다.


여전히 소녀같은 그녀의 나신은 겁에 질린 듯 파리하게 떨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 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채 뭇 대중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는 사실. 그 긴장감이 고스란이 전혀져 온다. 소위 비밀클럽을 알게 된 루시가 선택한 일은 어쩌면 99%의 대중들에게는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일 일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황제에게 바쳐지는 희생양처럼 군다. 그런데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침대위에서 잠이 든 소녀, 그리고 그녀 주위를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활보하는 늙은 남자들, 반응도 제 각각이다. 옷을 입고 있을때야 신사양반이지만 옷을 벗고난 뒤의 그들의 행각은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이 영화는 표피만 봐서는 불편할지 모른다. 가난한 여대생의 몸을 유린하는 재미에 빠진 기성세대의 새디즘적 추파에 당연히 분노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시각을 바꾸어 보자. 이 아슬아슬한 게임이 정말 우리 주변에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너무 나이브하다. 지금 이 순간도 어느 곳에선 이보다 더한 훔쳐보기가 전개될지 모른다. 나와 상관없기에 그냥 모른 척 하는 것일뿐.


영화 엔딩도 인상적이다. 소녀옆의 노인, 어쩌면 그 노인은 자신의 마지막을 어린 소녀와 함께 하고팠는지 모른다. 자신의 소원은 풀었는지 몰라도 잠들었을 때 자신에게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알고난 그녀에겐 무엇이 남겨졌을까. 세상은 悲感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