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자스민 우먼 - 기구한 숙명도 유전이 될까

효준선생 2011. 10. 4. 00:36

 

 

 

 

영화 자스민 우먼은 한 가정의 3대에 걸친 여성들의 기구하다면 기구한 운명을 옴니버스 스타일로 그린 독특한 영화다. 세계적 스타가 된 장쯔이의 7년전 모습을 구경할 수 있고 그녀가 3대에 걸쳐 주인공 역할을 해낸 보기드문 캐스팅 영화다. 그녀뿐 아니다. 여주인공의 엄마와 할머니등으로 역할을 바꿔 가며 등장한 연기파 배우 천충도 상당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다.


자스민은 중국어로 모리화(茉莉꽃)이다. 그런데 실상 이 영화는 3대가 아닌 5대에 걸쳐 여성이 등장한다. 그 중 가운데 3명의 조모, 모친, 딸의 이름이 각각 모, 리, 화다. 조모와 딸의 이름은 모리화와는 상관이 없이 지어졌다. 그럼에도 세 명의 이름이 합쳐져 하나의 꽃이름이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혈연이 중시되는 동양권에서 이들의 관계는 혈연만이 다가 아님을 인위적으로 설계해 놓았다. 리의 딸인 화는 불임으로 인해 입양한 자식이다. 결국 이 집안의 혈통관계는 피가 아닌 사회적 관계로 형성되어 있으며 그 관계조차도 하나의 공통된 운명의 끈으로 엮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각각 50년대초, 60년대말, 80년대초를 조명하기에 현대 중국사와 그 궤를 맞춰나간다. 하지만 정치색이나 이념은 상대적으로 매우 흐릿하다. 외부의 영향에 휘말리기 보다는 여인의 개인적 운명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전쟁, 정치색 갈등, 경제력 이런 것에 좌우되는 운명이 아닌 만나는 남자와의 관계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제작자, 공산당원인 노동자, 대학생이자 유학생인 남자와 각각 만나는 세 명의 여성은 늘 버림을 받거나 의존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다 극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제 아무리 여자 팔자 뒤웅박팔자라지만 세 명 모두 엄마의 조언을 무시한 선택의 결과를 얻는다.


주인공의 캐스팅을 두 명의 배우에 의존하다 보니 약간 헷갈릴 수 있는데 워낙 연기도 잘하고 이미지가 뚜렷해서 영화적 가공의 허용안에서 이해하게 된다. 딸은 엄마의 前轍을 밟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그리고 그게 어쩌면 중국 사회라는 커다란 거시적 틀 안에서 개인사의 변화도 어떻게 존중되어야 하는 지를 보여준다.


상하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지라 엄마역할의 천충은 간혹 상하이 방언을 섞어쓰지만 북경 출신인 장쯔이는 오로지 북경어만 구사하는 것도 재미있다. 匯隆사진관에서 나중에 紅旗로 간판이 바뀐 것 말고는 시대상의 변화는 거의 없어 보였다. 맨 마지막, 즉 5번째 어린 딸이 노는 장소가 중산층이 살만한 아파트로 바뀐 것 정도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처럼 보였다.


남자의 눈을 배제하고 오로지 여성의 눈으로만 개인적 운명론을 설파한 영화 쟈스민 우먼은 장쯔이가 왜 대단한 배우인지를 말해주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중에서도 대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