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의뢰인 - 정황과 증거의 미로에 빠지다

효준선생 2011. 9. 20. 00:27

 

 

 

 

세상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진실들이 많다. 그러나 그 진실이 법 앞에서 모두 제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문제는 법에 매달려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과 몸값 비싼 고급인력이 매달린다는 점이다.


법정 스릴러물임을 표방한 영화 의뢰인은 사건이 발생하는 과정은 과감히 생략한 채 범행 현장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피의자를 확정해 놓은 상태에서 그의 유무죄를 따져보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사건의 단서가 되는 장면들은 플래시백을 통해 암시를 해주고는 있지만 그건 결말로 미리 가려는 관객들에게는 혼란만 가중시키는 빗장의 역할을 톡톡히 할 뿐이었다.


최근들어 스릴러 영화를 만들 때 가장 큰 고충은 바로 폐쇄회로 카메라의 존재일듯 싶다. 추리도 수사도 필요없이 사건 발생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화면만 들여다보면 범죄행각을 알아내는데 큰 애로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영화에서도 딜레마였던 것으로 보인다. 흔히 볼 수 있는 사건발생 때 카메라가 먹통이었네, 전산오류가 생겼네 하며 불쾌한 우연의 일치를 내세우지 않지만 이런 저런 고민의 흔적은 역력했다. 여전히 의문의 앙금은 남았지만 이 문제를 교묘하게 처리하고 나면서 법정싸움은 검사와 변호사가 아닌 감독과 관객의 두뇌싸움으로 전이되었다.


검찰과 변호인단의 노력으로 한 "죄없는" 남자의 인생에 씌워진 누명을 벗길 수 있다는 생각은 영화적 장치였다. 법정에서의 유무죄만을 기대하는 관객에게 선고의 후련함은 또 다른 찝찝함을 야기하고 그걸 스릴러영화의 반전이라고 하는 요즘이라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범죄행위와 여기에 대한 몇 차례 공판과 실랑이속에서 답안은 이미 나왔다. 그러나 그걸 쉽게 눈치 채지 못하게, 그리고 다른 “지름길”을 제시하는 영민함이 바로 영화 의뢰인의 특장점이다. 이 영화에서의 제시된 “지름길”은 바로 증거확보와 증인 채택이다. 일단 아무런 물증이 없다고 못을 박는다. 다 보고 나면 그럴 리 없다고 생각이 든다. 목격자도, 폐쇄회로 녹화본도, 심지어 현장감식반도 발견하지 못한 지문까지도 없다. 또 하나는 어디에도 쓸모 없어 보이는 증인들, 그들이 실없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 모두들 잘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검사와 변호사는 엉뚱한 변죽만 올린다. 이렇게 문제 해결의 가장 쉬운 해결책을 뭉개고 나니 결국은 소설에 가까운 정황만 남게 된다. 바로 짜맞추기식 수사인 셈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점점 그 미로 같은 정황타령에 매몰된다.


미로속에 일부러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중국 북경에 있는 원명원에서 황제는 미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앉아 미로안에서 탈출구를 찾아 헤매는 내시와 궁녀들을 보며 즐거워 하는 다소 가학적인 유희장소, 뻔히 목적지가 보이는데도 자꾸 하염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다보면 짜증도 나고 오기도 생긴다. 이 영화 분명 그런 점이 없지 않다. 남자의 아내는 피살당한 것으로 보이고 범인은 그녀의 남편으로 추정되지만 아무런 물증도 찾을 수 없다.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제2의 인물이 있는 것일까 우연히 찾아온 택배기사나 야쿠르트 아줌마가 범인이라는 이야기라도 되나.


범죄의 동기나 과정, 그리고 처벌 이런 기시감으로 가득찬 기존의 범죄 스릴러 물에서 벗어나 "그가 과연 범인일까"라는  하나의 타깃에다 시선으로 모으는 사이(정확하게는 하정우와 박희순의 대결구도에서 누가 멋지게 이길까)  그것을 부정하는 영화  의뢰인을  다보고 나면 산뜻하면서도 우울한 결말을 미리알고 있었음에도 잠시 다른 곳에 빠져있었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의뢰인 (2011)

9.4
감독
손영성
출연
하정우, 박희순, 장혁, 성동일, 정원중
정보
스릴러 | 한국 | 2011-09-29
글쓴이 평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