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돈비 어프레이드 - 이빨빠진 중강새도 성장통이다

효준선생 2011. 8. 11. 01:53

 

 

 

 

아이들이 7,8살이 되면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사로 잡힌다. 자기만 그런 건가 하는 두려움, 혹은 뭔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건가 하는 공포감이 든다. 밥맛도 없고 누군가 어디 아프니라고 물으면 대답하기도 싫다. 주변에 또래 친구나 언니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부모가 일을 나가면 늘 외톨이다.


이 아이에게 닥친 일은 바로 幼齒가 빠지는 통과의례다. 처음 이발관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때도 무서웠다. 날카롭게 벼린 가위가 머리위에서 빙빙돌고 애지 중지 길러왔던 태내 머리카락이 싹독 잘려나갈때의 공포, 그래도 아프진 않았다. 자르고 나니 한결 시원하고 거울을 보니 밉지도 않아 보여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빨이 빠지는 것은 일단 아팠다. 흔들거리는 이빨을 남들에게 보여주어도 되나? 혹은 이빨이 빠진 자리에 다른 이빨이 자라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은 그때 나이의 아이들에겐 성장통에 다름 아니었다.


나만 그런게 아니라 언니 오빠도 다 겪은 일이라며 위로해주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고 흔들리던 이빨이 제풀에 못이겨 자연스레 빠질라치면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피가 좀 묻은 유치가 손에 남겨졌다. 이걸 어쩌지, 어른들은 지붕위에 던져 놓으면 까치가 물어가고 대신 새 이빨을 선사한단다며 지붕에 던지라고 재촉을 했다.


높은 지붕위로 이빨 하나를 던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다시 굴러 떨어진 이빨을 서너차례 반복한 뒤에야 가까스로 얹어놓으며 그제서야 할 일을 다 한 것 같아 시원해졌다. 이빨이 빠져나간 자리를 혀끝으로 문질러 보며 스스로가 한뼘 커졌다고 위무한다.


영화 돈비 어프레이드는 호러물이지만 성령이나 귀신이 뿅하고 나타나 놀래키는 영화는 아니었다. 어린 여자아이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런 저런 상황에다 기상천외한 괴생명체를 대입시켜 그 또래 아이들의 정서를 다소 과장스럽게 화면에 옮겨 놓은 스릴러 물이라고 볼 수 있다.


봉인된 그들이 소녀의 선심으로 풀려나고도 수시로 여자아이를 괴롭히고 막판엔 가족들에게도 위협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며 받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음을 반추하게 된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낸 어른들은 기억속에 저장만 해두고 잊혀진 것들이지만 꺼내 놓고 보면 성장이라는 것은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 그게 진실이었다.


이 영화에서 아이에 비해 어른들은 매우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 모두 자기 일에 바쁘고 계모와 남자의 딸 사이의 매끄럽지 못한 관계들도 아이의 정서를 일정 부분 잠식한다. 아이들에게는 늘 바르고 착하게 살라고 하지만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주지 못하면 쉽사리 악몽을 꾸거나 자다가 驚起를 하는 것도 특징이다.


영화는 고택안에서 대부분을 찍었다. 음험한 분위기와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니 말 그대로 귀신이라도 튀어 나올 것 같은 四圍, 집안일을 하는 아저씨가 괴생명체에게 피습을 당하자 아이는 그 자체가 공포가 된다. 특히, 지하실, 아이의 방이 주된 피사체가 되는데 박쥐를 닮은 괴생명체의 현존적 의미는 다소 애매하다. 너무 선명한 크리처가 무슨 동물의 변종인지, 혹은 외계인의 재림인지는 모르겠지만 공포물이 어느 순간엔 SF공상과학 영화의 그림자도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은 자란다. 그리고 이내 자기가 어렸을 적 겪었던 일을 잊는다. 잊는다는 것 자체가 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딩 근처 괴생명체들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샐리(아이)는 자신들의 존재를 잊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들을 찾아 올 것이다.” 


권선징악으로 급하게 치장한 여타 호러물과는 달리 아이의 눈으로 쳐다본 성장의 과정을 換齒라는 소재로 적절하게 녹여낸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수작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