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그을린 사랑 - 편지 두통에 담긴 한 여인의 비통史

효준선생 2011. 7. 7. 01:44

 

 

 

 

도무지 도망칠 수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인육을 섭취하게 한다든지, 혹은 아들이, 혹은 아비가 제 어미나 딸을 범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가장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두 가지의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윤리적 강요를 저버릴 수 없는 것임에 그걸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가장 치욕적인 징벌이 아닐 수 없다.


신화 속에서 드물지 않게 다루어진 이런 이야기들이 인류사에서는 어떻게 접목되었을까. 그럴 리 없다며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이야기지만 전쟁이라는 변수하에서 없었다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 그을린 사랑을 보면서 도대체 주인공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들의 근원적인 병폐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했다. 그것은 종교였다. 이교도간의 사랑을 했다고 해서 가문을 망신시키는 것이라며 형제자매를 죽이려 들고, 총알이 亂飛하는 테러의 현장에서도 작은 십자가 하나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도 종교덕이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종교의 본질적인 폐해나 의례를 지적하거나 그런 모습이 등장한 적은 없다. 테러리스트들은 그들의 종교적에 離叛하는 무리들에게 총을 겨누고 살상을 할뿐이고 그 안에는 인간의 존엄, 동일 민족의 동정, 여성과 노약자에 대한 敬意 따위는 눈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노릇뿐이었다. 그들로서는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기 위해 종교적 신념을 그 어떤 가치관보다 앞에 내세우는 것들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한 소년의 무섭도록 집요하고도 날카로운 시선에서 시작된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과 아킬레스 건 쪽의 세 개의 점. 소년은 누구길래 이토록 시작부터 관객의 심장소리를 낮추어 놓는 것일까 붉은 글씨로 새겨놓은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 엄마 나왈이라는 이름들, 그리고 이어지는 지명들. 영화는 분명 진행하는 중임에도 그 속도감은 느려터졌다. 대체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근동지방 어딘가에서 찍은 모습이 역력하지만 구체적인 국가명은 알기 어려웠다. 국기가 간혹 눈에 들어오지만 오늘날의 국기 모습도 아닌 듯 싶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그만두자면서 전쟁의 惡性을 고발하는 반전영화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과연 힘없는 한 여인과 가정사가 아수라장 같은 인간군집속에서 어떤 반향을 불어 일으키는지를 느리지만 매우 강한 톤으로 말할 뿐이었다. 


영화는 두가지 패턴으로 흘러간다. 70년 즈음 엄마 나왈의 임신과 남자친구의 죽음, 그리고 아이를 떠나보낸뒤 그녀의 방황, 민병대장을 살해하고 갇힌 뒤에 벌어지는 일들과 그 엄마의 죽음 뒤 아직 다 파헤치지 못한 이야기를 쫒아가는 쌍둥이 남매의 이야기가 교차 편집되었다. 상관없는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야할 것 같은 이야기가 어느새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을 알기 시작한 뒤에는 딸 잔느의 비명처럼 다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에서 수영장은 몇가지 의미를 준다. 물이 빠진 텅빈 수영장은 정신적 공황상태를, 남매가 함께 수영을 하는 장면은 진실을 알게 된 뒤의 허탈감과 상호 위로를, 그리고 자못 북적거리는 수영장에서의 뜻밖의 조우장면은 다시 파멸의 결론을 의미한다. 물은 모든 것을 씻어 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한데 뒤섞을 수도 있는 이미지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꼽아보자면 엄마 나왈이 버스를 타고 가다 기독교 테러리스트를 만난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모두 이교도, 그들은 버스를 탄 사람들을 이유없이 사살하고 버스를 불태운다. 그러나 십자가를 보여준 나왈만은 살려준다. 그때 어린 여자아이를 자신의 아이라며 품에 안았지만 그들은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않고 아이마저 살해한다. 이 영화 포스터 속에 보이는 여자의 모습은 바로 이 상황을 캡쳐한 것이며 이 영화의 주제와도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엄마가 남긴 편지 두 통이 개봉되면 그것은 바로 판도라의 상자가 된다. 하나는 제 어미 얼굴도 알지 못한 채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아들에게, 또 한 통은 쌍둥이 남매의 아버지에게...그러나 그 두통의 편지가 누군가의 손에 들려진 순간,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해진 미필적 고의를 빙자한 가장 치욕적 강박일 것이다. 전쟁통이라는 설정에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한편, 어쩌면 신화속 이야기를 오늘날에 치환할 것이라며 놀란 가슴을 쓰다듬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유일한 진정제일지도 모른다. 


일과 일을 합치며 이가 되어야 함에도 다시 일이 되어버린 이유를 이 영화를 다보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