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헤어드레서 - 뚱보 아줌마의 경쾌한 인생행보

효준선생 2011. 7. 5. 00:39

 

 

 

우리 주변엔 수많은 편견의 시각을 두며 바라보는 피사체들이 있다. 그 피사체를 형용할 수 있는 단어들 앞에는 “너무”라는 정도부사를 놓고 강조를 하며 ‘왜 저렇게’ 하고 부정적인 가치를 부여하곤 한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말랐다, 시커멓다, 지저분하다, 처량맞다 등등, 그 피사체가 나와 같이 폐로 호흡하며 위를 통해 먹거리를 소화하는 인간이라면 그런 평가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시각적 반응은 대체적으로 미적감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런 가치는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면서 스스로의 인지를 통해 축적된 것들이 피사체로서의 사람을 대하면서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오는 단어들. 그러다면 타인이 나를 보고는 어떤 반응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독일영화 헤어드레서는 소위 인권영화 범주에 넣을 만했다. 통독이후의 그곳의 사회문제들, 고용보험, 경제불황과 실업문제, 이민족 정책, 권위에 대한 반항과 더불어 주로 다루어 지는 부분이 바로 여주인공의 신체적 결함(?)와 관련된 우리의 시각을 되집어보는 가치지향적 영화다.


다소 무거운 주제임에도 가을날 지는 낙엽같은 쓸쓸함은 결코 느껴지지 않았다. 카티는 이혼후 사춘기 딸과 함께 베를린으로 와서 적응중이다. 그러나 가진 돈도 얼마없고 직장도 없이 고용보험에 의존에 연명하는 처지다. 그녀가 가진 손기술이라고는 머리 다듬는 일 뿐인데 불경기에 누가 머리하는데 돈을 많이 쓸까. 소개로 찾아간 미용실에서의 해프닝은 그녀가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데 일조한다. 뚱뚱하다고, 그래서 아름답지 않다고 채용할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미용실 근처 빈 가게에 자신의 미용실을 차리기 위해 동분서주 하지만 풀어야 할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다.


그녀 주변의 거의 모든 것들은 그녀의 체형에 맞지 않게 그녀를 괴롭힌다. 좁은 문과 입구, 게다가 툭하면 고장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어쩌면 그녀를 스크린을 통해 보는 관객들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아침에 제 혼자 일어나지 못해 창틀에 매달아 둔 끈을 잡아 당겨 도움을 받는다는지 혹은 더 이상 푸짐할 수 없을 것 같은 나신을 보여주면 화면을 꽉 채우는 모습은 당신들이 좋아하는 글래머란 이런 것이 아니냐며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피부보호제를 몸 구석구석 바르며 자신의 몸을 다듬는 그녀의 모습은 여는 젊은 처자들의 그것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영화의 흐름이 바뀌는 것은 그녀가 부족한 돈을 구하기 위해 베트남 이민자들을 도와주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돈을 보고 한 일이지만 어느덧 친구처럼 변해버린 그들과의 관계, 그들은 그녀의 몸이 뚱뚱하다고 별다르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친구 이상의 감정을 표현한 남자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영화가 진행되면서 늘 오픈할 것 같았다가 주저않고 마는 그녀의 미용실은 과연 제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을 수 있을까? 설사 불가능해진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주저앉아 울거나 괴로워 머리를 쥐어 뜯지는 않을 듯 싶었다. 농담도 잘하고 손님 비위 맞춰주는 일도 잘하는 그녀는 천생 세일즈우먼이다. 과하게 뚱뚱해서 건강이 위협받는 것을 빼고는 얼굴도 아주 밉상이 아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바로 옆에 앉은 여대생이 열심히 다이어리를 적는다. 그런데 바로 어제 날짜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45kg을 유지하자, 그래야 내 자신이 떳떳해질테니까” 스쳐지나 듯 본 글귀지만 영화의 내용과 오버랩되면서 웃음이 났다. 세상을 살면서 몸이 큰 자산이 되는 시대를 살다보니 이런 생각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있구나. 어느덧 불쑥 나오기 시작한 배를 내려다 보며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