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풍산개 - 분단 시대에 꼭 필요한 택배 아이템

효준선생 2011. 6. 21. 00:18

 

 

 

적성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산지 이미 50여년,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끊임없이 내외부적으로 이념과 체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려왔다. 영화가 현실의 거울이라는 전제하에 이런 남북 분단의 현실은 영화 시나리오에서도 더없이 좋은 소재였고 몇몇 작가들의 펜대에서 좋은 작품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믿음하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었다. 


대개 대한민국의 가치관과 싯점에서 서사를 하다보면 “나는 좋고 너는 나쁘다‘는 이분법적 편가름이 영화속 주요한 색깔이었고 이런 저런 상황 때문에 절대로 이런 가치관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자의적, 타의적 움츠림도 있어왔다. 

간혹 둘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兩非論이나 싸워 뭐하냐 대충 어울렁 더울렁 평화롭게 잘 지내자는 兩是論이 득세해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했지만 그러자니 확연히 저감되는 리얼리티때문에 영화는 산으로 가고 말았던 적도 많았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의 공간에서 제3의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을 경계인이라고 칭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현재 집권하는 통치자의 생각에 맞지 않아서 주저하고 있는 순간 이들 경계인들은 마치 박쥐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발디딜 공간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화 풍산개를 보기전 짐작한 시놉시스는 대략 이런 것들이었다. 휴전선을 제 안방 문지방 넘듯 쉽게 넘나들고 북파 간첩과 정보국 요원들 사이에서 요령껏 빠져 나오는 속칭 "배달원"의 모습은 일견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영화는 그의 활약과 경계인으로서의 고뇌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남과 북의 소위 권력층의 끄나풀들의 알력과 사랑타령으로 촛점이 흐려지더니만 결국 난감한 시츄에이션 코미디로 변질이 되어 버렸다. 


달리는 모습이 민첩한 것이 풍산개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라 풍산개가 그려진 담배를 피우는 “풍산”은 제 이름도, 제 고향도, 심지어 말한마디도 하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로 분했다. 그런데 과연 그를 경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마치 기계인간 같은 포스로 성실하게 일만 하던 그가 고위층의 애첩을 데려다 주면서 연정이 생겼다니 “결국 너도 남자였구나”라는 농담구가 떠오른다.


정체 불명의 남자, 철조망을 가느다란 장대 하나로 훌쩍 넘어다는 설정부터 코미디는 시작된 셈이다. 그럼에도 이를 우리가 보편 타당하게 생각해 왔던 분단극복이라는 희망으로 치환한다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사랑에 빠져 정신 못차리는 “그들”을 보면서 “위대한 통일 혁명과업”을 수행하기엔 그들은 그저 사랑에 죽고 사는 선남선녀에 불과했다는 착각을 일깨우는 각성제 역할을 해냈을 뿐이다.


분단이라는 무게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급하게 상황극으로 몰아가는 극점에는 한국의 정보국 요원과 북한의 간첩단간의 싸움박질에서 터진다. 밀폐된 공간에 몰아넣는 과정, 그 상황이 어떤 전개를 가져올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애매한 입장이 된다. 다른 사람이 아닌 관객이...


단 한마디 대사도 없이 오로지 액션과 눈빛 연기를 보여준 윤계상의 영화로 남기고 싶지만 맨 처음 하고 싶어했던 경계인의 삶을 전히 풀어내지 못한 채 들고 있는 총을 버리고 ‘우리 평화의 길로 나아가세’라고 얼버무리는 결론은 아쉽다. 잠깐 사랑을 느꼈던 사람을 먼저 보내고 다시 본업으로 돌아온 풍산(개), 열심히 달리다 철조망 위에서 멋지게 마지막을 장식한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이 영화의 인상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