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일루셔니스트 - 잊혀져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효준선생 2011. 6. 20. 01:14

 

 

 

 

누구나 왕년을 떠올리면서 웃음짓던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이 들고 기력이 딸리며 자신이 평생의 업이라고 생각하던 일을 접어야 하는 순간, 그 왕년은 이미 한참을 지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지만 왕년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은 슬프면서도 행복한 일이다.


영화 일루셔니스트는 바로 이 왕년의 모습을 현재에 비추어, 세상의 쇠락하는 모든 것을 대변하듯 초지일관 쓸쓸하게 그려낸 프랑스 애니메이션이다. 프랑스의 클럽에서도 퇴짜를 맞고 영국의 시골 펍에서도 자리를 지키지 못한 채 이곳 저곳 떠돌며 한물간 마술연기를 하는 남자 타티세프, 중년을 훨씬 지나 흔들의자에서 손주나 봐야 할 나이의 노인이지만 그의 예술혼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삶에 대하여 비관하거나 포기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다음 삶을 기다리는 초로의 모습일 뿐이었다.


시골 펍에서 만난 어느 소녀와 동행을 하게 되고 간신히 도회지로 들어와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무대위에서 호구지책을 마련하던 그, 심지어 마술사가 아닌 주차장 관리 알바를 하는 그, 없는 살림이지만 소녀에게 옷과 구두를 마련해 주면서 쓸쓸한 인생의 작은 웃음을 간직한다.


이 영화는 빠른 진행과 칼로 잘라낸 듯 한 화면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생경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장면 하나하나 동화책을 오려다 붙인 것 같은 푸근함이 들고 극도를 아낀 대사대신 이미지로 하고자 하는 의사표현을 한다. 가진 것 없는 그들에게 이런 방식은 유효하다. 느릿한 동작은 페이소스가 묻어나고 그걸 지켜보는 관객의 머릿속에서는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준다.


한국에서 신발은 선물하다면 신고 도망갈 지도 모른다고 해서 기피하는 데, 이 영화에서도 두 켤레의 신발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녀는 남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시간이 흘러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남자는 또 자기만의 길을 떠난다.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토끼도 풀어주고 기차에 오르는 남자, 어쩌면 다시 못볼 친구의 뒷모습인 것 같아 쓸쓸해 보이지만 기차안의 그 모습은 여유로워 보였다.


금수와 초목도 인간과 같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언젠가 쇠락한다. 알아주지 않는 작은 손재주 하나로 떠돌이처럼 사는 남자, 한때는 활활 타오르는 구공탄이던 때도 있겠지만 이젠 희게 변한 연탄재가 되었다. 세상 모든 쇠락하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소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