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후에 - 요런 집사하나 있었으면

효준선생 2011. 6. 16. 00:34

 

 

 

 

일본 단편 추리소설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수준의 상상력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건지 궁금하기만 하다. 결말을 미리 짜놓고 앞부분부터 얼개를 만들어 가는 능력은 탁월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는 50페이지 정도 분량의 이야기 한 편이면 좋은 단편 영화 하나 찍어낼 수 있을 정도의 영상미가 눈 앞에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야기를 길게 써서 독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방법은 있다. 단서나 복선과는 별로 상관없이 배경에다 묘사만 잔뜩 입힌다든지, 사건 전개와는 별로 상관없는 수다들이 그렇다. 이런 바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딱 할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똑 떨어지는 느낌으로 스피디하게 읽히게 만든다.


일본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가 쓴 21세기 북스의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독특한 패턴 추리단편선이다. 즉, 한 편의 이야기 구조가 사건 발생, 레이코 형사의 개입, 가게야마 집사의 우월한 추리력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이야기 전개가 번뜩이는 책이다. 마치 주말 늦은 밤 외국의 드라마 시리즈 한 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캐릭터는 가게야마라는 이름의 집사다. 한국에서는 집사라는 직업이 무척 생소하다. 잘 사는 재벌 집에서 하녀들을 통솔하고 이런 저런 집안일을 관리하는 자로 알고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집사는 결코 그런 일에 만족하지 않는다. 주인장 따님이자 현직 경찰인 레이코에게서 얻어들은 이야기만으로 추리를 꿰어 나가는 이른바 “신의 촉”을 자랑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레이코와 가게야먀의 대화는 재벌집 주인 딸과 집사의 그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탐정과 조수의 대화처럼 해학적이고 오히려 레이코를 코너에 몰아붙이는 가게야마의 언행은 웃음을 유발하게 한다. 그만큼 이 책은 사건풀이에만 주안점을 둔 게 아니라 세상 그 어떤 끔찍한 사건도 이들 콤비의 손을 거친다면 금새 풀릴 것이라는 믿음이 가능해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사건은 모두 6편이다. 모두 다른 이야기로 아무 연관성이 없지만 일본인 특유의 꼼꼼하고 디테일한 설정은 유감없이 발휘되는 편이다. 예를 들어 한 남자의 사망에는 포도주 콜크에 있는 극세한 구멍과 관련이 있고 한 여자의 사망에는 장미 가시와 관련이 있다는 식이다. 또 구두 발자국이나 지포 라이터도 사건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여섯편의 에피소드는 범인이 누구냐? 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피해자의 살해도구는 무엇이냐가 더욱 흥미를 끌게 된다. 늘 그렇듯 모든 범인은 초반에 언급된 그들 중의 한 명이다. 살해 동기나 결과가 밝혀진 뒤 그들의 미래엔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저 가게야마가 펼쳐 놓는 기상천외한 살해 과정과 그 과정에서 동원된 미세한 도구가 중요한 키포인트가 된다.


책 제목처럼 저녁식사 후에 집사가 들려주는 탐정이야기에 한 번 푹 빠져보고 싶다면 이 책 한 번 읽어보는 것도 나른한 시간을 보내는데 탁월한 선택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