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옥보단 - 개과천선, 권선징악, 사는 것도 힘드네

효준선생 2011. 5. 12. 02:36

 

 

 

요즘은 동네에서 비디오 대여점을 찾기 어려워졌지만 90년대 초반 국내 비디오 대여업이 최고 전성기이던 시절은 마침 홍콩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던 홍콩영화의 여러부류들, 대개는 액션물이나 강시가 나오는 기괴류였지만 그중에서도 엽기에로물들은 빨간 딱지를 달고 구석에서 은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커버만 흘낏 봐도 야시시한 포즈에 제목도 얼추 비슷한 것들. 육보단, 육포단, 옥포단등등 거기에 얼마나 흥행이 잘되었는지 숫자까지 줄줄이 달고 나온 것을 보면 그런 류를 유독 좋아하는 아저씨들도 많았다는 이야기다. 다들 어디로 가셨는지.


영화 옥보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2011년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온 이 영화는 제목 뒤에 장르와는 잘 안맞는 것 같아보이는 3D를 달고 있다. 액션물이나 공상과학영화에나 어울리던 그 꼬리표를 달고 있는 사극에로라니. 하기사 안될 일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눈을 현혹시킬 수 있는 장치는 앞으로도 더욱 발전할 것이다. 상상하지도 못할 수준으로, 지금이야 입체영상에 환호하지만 누가 알겠나. 촉각마저도 느낄 수 있을지. 그런데 그 피사체가 벌거벗은 여인네라면, 이 영화가 의도한 바는 선명해 보인다. 고래로 내려오던 중국 에로문학의 표피를 벗겨내고 거기에 일견 그럴 듯 해보이는 입체영상을 뒤집어 씌운 셈이다. 그러니 3D운운은 뒤에 두고 일단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다.


옥보단의 원전은 명나라 말엽부터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중국의 유명 극작가 李漁의 작품 肉蒲團이다. 이번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요 캐릭터들인 미앙생, 옥향, 서주, 극락들은 실제로 이 작품에서 나온 이름들이다. 미앙생과 옥향의 결혼사, 그리고 말(원전에서는 개)의 생식기를 이식하는 장면, 수많은 여인(원전에서는 유부녀로 나옴)들과의 교접장면, 옥향에 대한 겁탈 장면등은 원전에도 등장한 것들이다.


8,90년대 버전에서는 그저 웃기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었다면 이번 영화는 그래도 원전의 분위기를 많이 반영한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이어가 쓴 육포단은 그 창작시기도 상당히 중요하다. 자신의 고국이 망하고 동북에서 오랑캐들이 세운 나라의 신민이 되었을때의 허탈감 사회적으로 퇴폐적 분위기가 없을 리 만무했다. 한족 지식인들은 제 아무리 빼어난 학식과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쉽사리 성공의 사다리를 밟지 못하면서 그들은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이런 류의 문예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국 관객들은 너무나 에로틱하다. 엽기적이다. 포르노와 무슨 차이가 있나라고 하지만 공개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보는 야동과 비교하면 이 영화는 애들 장난 수준이 아닌가.


오히려 개과천선과 권선징악으로 점철되며 완전 끝장을 내버리는 이 영화가 오히려 속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동아시아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남근 우월주의와 에로틱한 문화에 대해 쉽게 입밖으로 내지 못하는 가면근성에 대한 攻駁이다.


일견 음울하고 데카당스한 퇴폐적인 분위기, 術葯이 등장하는 등의 도가적인 분위기, 몸매 좋은 여인네들의 전라장면이 펼쳐지고 시도때도 없이 오버스러운 남녀상열지사가 펼쳐지는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크기에 집착하고 거기에 부응하는 모습이 사회현상을 꼬집는 블랙코미디처럼 여겨졌다.


이 영화가 홍콩에서 대박을 쳤고 수입금지된 중국 대륙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홍콩까지 넘어왔다는 소식에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알고 본 고전작품이 입체영상이라는 과학을 힘을 빌어 종래 보기 드문 에로틱한 영화로 재탄생했다는 소식에 “그래? 그럼 비교한번 해볼까” 하는 군중심리가 발동한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작년에 개봉한 방자전에 얼마 되지 않지만 여배우들의 나신에 침을 꼴깍 삼키고 들여다 본 수많은 한국 관객들이, 춘향전이 얼마나 야한 장면을 가진 작품인지 알았다면 중국인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영화를 자신의 도덕성을 잣대로 작품성을 논할 수는 없다. 자신이 경험하고 지금까지 感受했던 많은 정서와 상식이 영화와 만나 또다른 자신만의 느낌을 갖게 될 뿐이다. 가학적이 면이 없지 않고 입체 영상의 효과를 표현하기 위해 액션씬을 적지 않게 넣은 것도 어쩌면 감독과 제작자의 고충이라고 본다. 이런 저런 면에서 볼때 아직도 한국 관객들에게 영화 옥보단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컨텐츠일 수 있지만 분명 이 영화 속편은 나올 듯 싶다. 그게 홍콩영화의 부흥에 일조를 하든 말든, 흥행작의 속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