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천녀유혼 - 다시 찾아온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

효준선생 2011. 5. 5. 00:46

 

 

 

 

1980년대 말 남영동에 자리했던 재개봉관인 성남극장 퀴퀴한 한 구석에 갓 청소년기를 지난 대학생이 앉아 있었다. 중국어를 배운다는 이유로 중국 영화를 몇 편 보던중 눈에 띈 영화 천녀유혼, 주인공이 그 유명한 장국영, 왕조현이라는 사실도 간과한 채, 세상에서 처음 보는 신기하고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푹 빠져 내리 4번이나 같은 영화를 보았다.


당시 극장에선 한 회가 끝나고 관객을 내쫒는 만행(?)같은 게 없었기에 청소하는 아저씨의 눈길만 잘 피하면 또 한 번 볼 수 있었던, 가난한 청춘에게는 그야말로 천국같은 장소였다.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재미가 들렸어도 같은 영화를 4번이나 본다는 건 迷惑당했음에 틀림없었다. 그후로 중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했대나 모라나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질러 놓았던 영화 천녀유혼이 리메이크 작품으로 24년만에 한국팬 곁으로 돌아왔다.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장국영을 대신해 신예배우가 그 자리를 메웠고 왕조현 못지 않은 미모와 팬덤을 자랑하는 청초한 미모의 유역비가 중국 영화사상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섭소천을 맡았다.


분명 이 영화는 새롭게 다듬어진 새로운 영화이지만 원작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력이나 표현력은 분명 진화되었지만 오리지널에 비교해 조연급인 퇴마사 연적하의 비중이 장국영이 맡았던 영채신을 능가하게 만든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되어 버리니 섭소천과 영채신의 야릇하고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세 명의 배역간의 삼각관계가 되어버리며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 반면, 올곧은 하나의 사랑이야기를 기대했던 예전의 팬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스토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점을 제외하고 새로운 버전으로 탄생한 2011년 판 천녀유혼은 칭찬해줄 만한 부분도 많다. 우선 볼거리다. 전에 없이 많아진 컴퓨터 그래픽은 할리우드 에스에프 영화에 손색없으며 이 CG 기술은 한국 업체의 손을 빌렸다고 한다. 특히 일대일 싸움 장면에서 빛을 발하는 무술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듬직한 이미지의 배우 고천락이 맡은 퇴마사 연적하의 비중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야기 구조는 원작과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때는 명나라 말, 흑산촌에 가뭄이 들자 하급관리 영채신이 파견된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난약사에 들러 물줄기를 트지만 그곳에 숙주하던 요괴들을 만나 한바탕 소동을 펼친다. 섭소천은 바로 그 요괴들중 하나다. 빛을 보면 사라지던 기존의 요괴와는 달리 대낮에도 활보가 가능한 것이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설화속에서 요괴는 대개는 사악하고 처단해야 마땅한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섭소천처럼 다소 의외의 이미지로도 등장한다. 원래 천녀유혼은 당대 전기인 이혼기와 원나라 정광조의 잡극 천녀이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모두 지괴류와 신선설화, 불교와 도교의 사상의 영향을 받고 당시의 구전설화를 뭉뚱그려 작품화 시킨 것으로 청나라 포소령의 이야기 책 요재지이에 실린 섭소천과 엮여 영화 천녀유혼의 테마가 되었다.


이 영화에는 몇가지 재미있는 단서가 있는데 요괴의 몸은 귀여운 여우이며 사람과는 사탕을 매개로 사랑을 나눈다는 설정이다. 왕조현이 그저 신묘한 분위기 메이커로 만족했던 것과 달리 신세대격인 유역비는 상대적으로 명랑 쾌활하고 심지어 상당히 수다스럽다. 자못 요괴라는 설정에서 벗어나 산속에 길을 잃고 헤매며 엄마를 기다리는 소녀처럼 보이는 것이 흠이지만 그녀만큼 아리따운 처자가 또 어디에 있을까 싶게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흑산촌의 고갈을 해결하려다 조우한 세 남녀, 사랑은 어떻게 맺어질지 궁금하지만 결국 착한 사람은 피를 보지 않는다는 교훈, 인간과 요괴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는 必可分의 관계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겨두었다.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회고는 접어두고 새로운 버전의 천녀유혼은 또 하나의 볼거리로 남겨두었으면 하지만 원작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심한 한국 영화팬에게 이 영화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