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 - 15년차 부부의 의미있는 여행

효준선생 2011. 5. 3. 00:16

 

 

 

 

영국 출신의 남자가 자신이 쓴 책을 홍보하러 이탈리아에 왔다. 독자들은 간담회에 참석해 그의 강연을 듣고 있다. 그런데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여인이 그에게 지극한 눈빛을 보내며 경청한다. 옆에 있던 아들로 인해 방해는 받았지만 기어코 만남을 성사시킨다.


화면이 바뀌면서 그 두 남녀는 승용차에 올라 경치 좋은 투스카니로 향한다. 여자는 골동품 수집상으로 보이며 둘간의 대화는 매우 공식적이면서도 예사롭지 않다. 대체 무슨 관계일까 단순히 작가와 팬의 사이는 아닌 듯 싶다.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는 초반에 주인공들의 관계를 밝히지 않고 일부러 트릭을 쓴 것 같이 만드는 바람에 초반에 둘이 나누는 대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저런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그냥 돌아서면 그만일텐데 뭐하러 주목을 해야하나 하는 그런 무덤덤함을 먼저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가 쓴 책의 제목은 “인정받은 위작”이라고 하며 그들의 첫 번째 방문지는 작은 미술관이었다. 그곳에는 아주 오랫동안 진품으로 알려진 한 여인의 초상화가 있는데 알고 보니 가짜였고 진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가짜를 진짜라고 여긴 사람들의 마음엔 진짜가 있지 있는 지 없는지라며 여자는 남자에게 일종의 힌트를 던져주지만 남자는 무심하게 댓꾸할 뿐이다. 도대체 정이 가지 않는 타잎이다.


미술관에서 카페에서 그리고 신혼부부들이 웨딩촬영지에서, 그리고 다시 차안에서 수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의 모든 관심사를 토론하듯 꺼내들지만 둘 사이의 수다의 핀트는 자꾸 빗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코스로 보이는 어느 마을, 레스토랑에 들어선 그들은 결국 싸운다. 부부싸움이었다. 사연은 사소했다. 주문한 레스토랑의 와인이 맛이 없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프랑스 와인이 최고라며 은근히 치켜세우는 여자, 영국 남자와 프랑스 여자는 이미 15년을 함께 살았던 부부지간이다. 그러나 부부사이에서 나눌 만한 어투가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어쩌면 별거중인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이별을 염두해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결혼의 형태에 대한 관객의 의문과 앞으로의 모습에 대한 설명이 배제되어 있다.


이 영화는 이런 주장을 한다. 오래 산 부부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던 서로에 대한 마음은 진짜였을까. 혹시 가짜는 아니었을까. 부부임을 밝힌 뒤 그들의 말투는 이전과 확실하게 변했다. 현실적이 되었다. 아이 이야기를 하고 첫날밤을 보낸 호텔에서 옛 추억을 되새겨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일방적이다. 남자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엄청난 대사량과 거의 둘만의 대화를 통해 그려내는 동선이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그들이 무슨 관계인지 미리 알았다면 이 영화 더 재미있지는 않았을까 이별여행이라는 것도 있다지만 남편에게 잘보이기 위해 오랜시간 화장을 가다듬는 부인의 모습에서 왠지 슬픔이 묻어났다. 혹시나 혼자만의 애탐은 아니겠지.


이탈리아가 주요 무대로 나오는 영화는 언제나 아름답다. 배경이 공들여 만든 세트 이상으로 아름답다. 아무데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림같다. 이 영화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신 영어, 불어, 이탈리아어가 마구 섞여 나와 좀 정신이 사납기는 한데 이란 출신 감독은 무슨 언어로 연기를 지시했을까 궁금해진다. 그 유명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