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리멤버 미 - 슬픔은 겹치기로 온다.

효준선생 2011. 5. 2. 00:22

 

 

 

영화 리멤버미는 흥미로운 시제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에 무슨 영어문법에서나 나올법한 시제가 있나 하겠지만 우리는 영화 시제에 대해 무시하거나 혹은 알게 모르게 그러려니 하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며 반응해온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공상과학영화인 아바타의 경우 아주 먼 미래의 어느 날부터 시작해서 시작이 많이 흐른뒤의 이야기라고 굳이 꼬집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인지하고 보았다. 반대로 제인에어의 경우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시간이 얼마큼 흐른뒤 까지의 이야기라고 알면서 보았다.


그런데 현대물의 경우 화자의 의상이나 말투만 보고서는 이게 언제쯤 이야기인지 잘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영화 리멤버 미는 과거의 사건 하나를 보여주고 나서 몇십년뒤라는 아주 간단한 자막하나만 놓고 오늘의 이야기일거라는 막연한 추측만 하고 보다보니, 이미 10년전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을 영화 끝날 때 쯤에서야 알게 만드는 그야말로 시제를 놓치게 만든 흥미로운 요소가 하나 숨어있었던 것이다.


시제가 무슨 그리 중요하냐고 한다면 근세기 들어 미국인에게는 중동에서의 전쟁이야기만큼 911사건에 대한 일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받아들여지는 모양이다. 이 영화는 아마 많은 미국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트라우마인 911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지도 못했으니 이 영화에서의 시제는 아마 과거완료형이라고 보면 적당할 듯 싶다.


1990년대 어느날 기차역 플랫폼에서의 강도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여자, 그리고 형의 자살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든 남자의 청춘은 우연히 카페에서 조우한다. 상처를 입은 두 청춘은 급속도로 친해지고 주변인들과의 어울림도 제법 무난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러브스토리만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잠시 상처가 봉합되나 싶었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의 현장 한복판에서 다시 이별을 해야 하고 남겨진 한 사람에게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다시금 중첩되는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결코 911사건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모두의 아픔으로 각인되어 있긴 하지만 그걸 일부러 파헤치거나 교묘하게 삽입하지도 않았다. 그저 상처입은 동물들이 서로의 혀로 상처를 쓰다듬듯 이들 청춘도 서로에게 위로가 되나보다 싶었던 순간 불쑥 찾아온 불행. 그건 누구든지 또 다시 닥칠 수 있는 것들이란 점이다.


주인공 남자의 동생을 통해 비춰진 이지메이야기와 여자의 양아버지의 불같은 성격도 이 영화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 등장인물 모두 뉴욕에서 성장하는데 어쩌면 오늘날 메가시티즌들의 막연한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을 때의 감정을 그리려고 하지는 않았나 싶다.


청춘스타인 로버트 패틴슨은 전작들인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의 허연 뱀파이어의 이미지를 벗기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연달아 반항아 또는 다소 퇴폐적인 청춘의 이미지로 등장하고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뭔가에 쫒기는 듯 하면서도 툭치면 폭발할 것 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등장하고 있다.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는 아닌 사회물에 가깝지만 대체적으로 어둡고 스타카토 같은 편집에 막판에서야 비춰지는 주인공의 운명에 안타까워하고 한숨짓기엔 다소 밋밋한 영화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