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소스코드 - 내 인생에 도돌이표는 없다(강추)

효준선생 2011. 5. 4. 01:52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서 본 기억이 나는 게임이 하나 있다. 모든 멤버를 두 팀으로 나누고 각 팀원은 최대한 조직력을 살려서 몇가지 주어진 미션을 정해진 시간안에 해결해야 한다. 만약 중간에 실수를 하면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게임의 묘미는 제 아무리 완벽하게 끝 지점까지 도달했다고 해도 실수가 있으면 그 실수한 지점부터가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이미 여러차례 시도한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에 쉽게 진력을 낸다. 이미 숙련되어 있기 때문에 생략하고픈 욕구가 넘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규칙을 지키야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쉬는 한숨은 시청자들에게는 재미가 된다.


영화 소스코드의 가장 큰 볼거리는 바로 이 반복되는 게임처럼 모종의 미션을 수시로 되돌이시키는 과정에 있다. 물론 혼자의 좌충우돌이기에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대신 이미 겪었던 구간은 요령있게 짜깁기하는 정도는 눈감아 준다. 그럼 단순히 게임같은 재미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인가 하면 결코 아니다.


슈퍼 액션 히어로의 대다수는 사고로 육신의 일부를 못쓰게 되는 처지에 처한다. 과학자들은 그 몸에 평범한 인간은 상상할 수 없는 테크놀로지 기술을 접합시켜 가공할 히어로로 재탄생시켰다. 물론 악을 물리치고 선을 지키는데 단지 활용될 뿐이었다. 간혹 잃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 자아의 정체성 때문에 혼란을 겪는 다는 이야기도 가끔 등장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환경과 변해버린 자아에 순응하며 그렇게 살게 된다.


이 영화은 기존의 히어로를 상당히 영리하게 꾸며냈다. 가공할 힘을 남발하지도 않는다. 총을 쏘고 악을 물리치며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그리지도 않는다. 관객들에게 편의를 위해 비주얼은 잘 생긴 제이크 질렌할을 가져다 사용하지만 그는 세상에 존재할리 없는 無定型體 에 불과하다. 그의 파트너격으로 등장하는 크리스티나(미셀 모나한 분)도 그를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할 분)가 아닌 그때까지 관계가 모호했던 역사 선생 숀의 모습으로 볼 뿐이다. 이 점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육신을 들여다 보는 사람은 나의 실체가 아닌 타인의 모습으로 인지한다. 그리고 난 그 타인의 육신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 컨센서스는 모두 또다른 누군가의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된다. 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엄청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럼 나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미션을 수행한 뒤의 나는 어디로 가는가.


철학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과학의 심리학적 측면이 농후하다. 이 영화는 수시로 기차안에서 발생하는 다사다난한 이야기를 반복해 보여준다. 그리고 범인 찾기에 혈안이 되도록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놈도, 저놈도 아니라면 대체 누가 범인인가? 관객들이 그 재미에 빠져 반복되는 영상에 지루하지 않도록 조치를 해놓은 반면, 주인공의 실체는 점점 자아찾기에 빠져들게 해놓았다.


이미 죽은 자가 영(0)과 일(1)이 반복되는 디지털 코드에 의해 과거의 인물로 대체되어 문제해결을 시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발상은 무척이나 신선하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들, 예를 들어 연쇄 방화범, 연쇄 살인범, 연쇄터러범의 소행은 최소한 마지막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속 박사는 결정적인 오류를 하나 저질렀다. 콜터 대위가 숀을 대체했던 이유가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했는데 앞으로의 사건마다 그를 쓰겠다는 것은 그를 6백만불의 사나이처럼 아날로그 시대에서나 있었던 액션 히어로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인가.


영화 마지막 부분는 천재적 발상이라고 보고 싶다. 가상의 공간에서 사건의 전모와 관련 문자를 날린 콜터, 과학자들이 그의 문자를 받은 시각은 과연 과거일까 미래일까 아직 일이 벌어지기 전의 이야기라면 그건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보이지 않은 실체가 미래로부터 보내온 메시아적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영화 엔딩 타이틀에서 평행이론을 언급했다. 스크린을 통해 감독은 관객을 현혹했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사건에 해결에 용병으로 치부될 수 없음을, 그리고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우리와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열심히 살아온 나(전쟁영웅)를 위해, 아니면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예를 들어 아랍인이라고 이상하게 보지 않는, 3류 개그맨의 익살에도 편하게 웃을 수 있는)을 위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해줄지도 모른다는 진한 휴머니티가 이 영화가 들여다보고 싶은,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측면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