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써니 - 추억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들(강추)

효준선생 2011. 4. 20. 01:36

 

 

 

오랜만에 푸짐하고 질펀하게 웃을 수 있는 한국영화 한편을 보고왔다. 영화를 보면서 몰입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는 공감과 동화가 아닐까 싶다. 즉, 저거 내 얘기인데 싶은 부분이 나와버리면 비록 나는 아니더라도 그 안에서 나와 동시대를 살았거나 혹은 친구의 모습을 투영해가면서 동질화가 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오랫만에 만난 벗들과의 수다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때는 그랬지라며 옛날 추억을 떠올린다는 것,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써니는 80년대 유행했던 팝송의 제목이기도 하고 전작<과속 스캔들>로 가열찬 반응을 이끌었냈던 강형철 감독의 차기작으로 주목받는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워낙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나서 후속작에 거는 기대는 감독의 이름값에도 달려있었다. 그런데 보고나니 “전작보다 더 재미있었다”라는 말과 “추억여행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꼭 하고 싶었졌다. 

 

 

 

이 영화는 보는 관객의 연령층에 따라 몇 가지로 감상이 갈릴 듯 하다. 가장 동화되기 쉬운 계층은 불혹을 넘긴 40대 여성 관객층, 80년대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이 영화는 다름아닌 자신의, 혹은 친구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설사 껌 좀 씹었다는 칠공주파가 아니더라도 연예인 좋아하고 오빠의 친구를 마음에 두고 간혹 머리끄댕이 잡고 친구들과 싸움도 하던 그 시절, 빵가게만 가도 눈치를 봐야했던 당시, 여고생들의 마음을 이처럼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것은 프리프로덕션의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당시를 재현해 내는 수 만가지 디테일들, 눈을 크고 뜨고 잡아내면 옥의 티가 아니 나올 수 없는 배경들이지만, 어느새 이야기에 빠져들어 그런 행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만약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그건 엄마에게 있었던 청춘시대이야기다. 울 엄마 어렸을때 저렇게 하고 놀았겠구나 하는, 지금과는 사뭇다른 청춘의 다른 이름. 생경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나이들어 20년 뒤에 다시 2011년을 그리워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세대를 아우르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80년대의 시대상을 부지런히 쫒아다니며 그 윗 세대 역시 그려냈으며, 이 영화의 스토리텔러격인 나미(유호정 분)의 딸을 통해 오늘날의 청춘과 비교도 해냈다.

 

 

 

 

 

이 영화는 종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 편집을 해냈다. 앞부분에 어린 시절을, 뒷부분에 성인 시절을 따로 편집한 것이 아니라 이른바 교차편집을 통해 배역들의 감정이 이입되도록 짜넣었다. 예를 들어 엠티를 가는 어린 학생들의 기차안, 카메라는 소녀를 잡다가 바로 앞에 앉은 중년 여성으로 옮겨간다.


워낙 유머코드를 많이 넣어서 코미디 물이라고 장르설정을 하고 싶은데, 다양한 인물들이 선을 보이며 이런 저런 요소를 꽉꽉 채워넣어 마치 잘 쪄낸 만두같아 보였다.

어린 소녀들의 다양한 캐릭터와 중반쯤에 느닷없이 등장한 시위장면에서의 싸움씬등은 이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또 수시로 흘러나오는 흘러간 팝송등도 추억을 되새김하게 했으며 이 영화가 청소년관람불가가 될 뻔한 장면이 나오는 뒷부분 (사실 이 부분은 예쁜 여자애들에게 가해지는 일종의 린치로 소문에서만 떠돌던 이야기였다)과 어린 수지의 성인역할은 대체 누구일까 하는 마지막 수수께끼를 풀어보는 기대감도 유의미한 장치였다. 이 영화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배우들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 한 컷만으로도 존재감을 발휘한 그녀는 90년대 최고의 cf전문 모델이었다.

 

 

 

 

이 영화는 잠재의식속에만 남아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내는 묘한 작용을 한다. 그리고 그게 자꾸 뭔가에 스며드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 휴대폰 라디오를 통해 쥬시 뉴튼의 "엔젤 오브 더 모닝"이 흘러나왔다. 80년대 히트곡 아닌가. 3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영화속 몇몇 장면이 떠올라 취한듯 돌아올 수 있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영화 한편에 복고풍이 된다는 것, 기분 좋은 경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