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무산일기 - 적응과 부적응의 괴리속에서

효준선생 2011. 4. 19. 02:47

 

 

 

 

 

2009년 유난히 탈북자를 그린 영화가 많았던 해였다. 마치 붐이라도 일어난 듯 싶었다. 하지만 주류가 아닌 독립영화 규모로 제작이 되다보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탈북자 이야기는 소수에 의한 그들만의 이야기로 치부되는 상황으로 인식되었다.


올해 선보이는 영화 무산일기는 그동안에 등장했던 탈북자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주인공 승철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강하게 불어 넣어 그들이 새로 찾은 신천지가 결코 녹록치 않음을 증명해내고 있다. 탈북자들 모두가 그렇게 살지는 않지만 우리들에게 어느 정도 각인되어 있는 이미지라는 게 이 영화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로 보이는 경제력, 혈혈단신으로 넘어온 그들에게 안정적인 직업이라는게 쉽게 주어지지는 않았다. 몇푼 되지도 않는 정착금은 이렇게 저렇게 곳감 빼먹듯 사라지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름대로 순진해 보이는 승철과 달리 같은 탈북자인 경철은 어찌보면 가장 자본주의적인 냄새를 풍긴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를 이용해 탈북자를 도와준다는 이유로 탈북자들의 돈을 떼어먹고 브랜드 옷만을 선호하며 호시탐탐 미국으로 건너갈 생각만 한다.


이 둘이 풀어내는 화법은 적응과 부적응의 사이에서 모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모두 낯선 곳에서의 외로움과 상응한다. “내가 그래서 친구가 없는 거야”라고 공박하는 경철에게 친구란 그저 가진 돈을 뜯어 낼 수 있는 이른바 “호구”에 불과하다.


무산일기의 제목은 승철이 함북 무산 출신이기도 하고 無産이라는 프롤레타리아의 의미이기도 하다. 또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라는 믿음이 霧散되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정을 주기위해 없는 사교성을 발휘해보려 하지만 이곳은 냉랭하기만 하다. 교회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입받지만 교회에서 나오면 바로 서로에 대해 백안시하는 교인들. 오히려 승철이 탈북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야 받아들이는 척하는 교회사람들의 모습이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이 영화는 독립영화가 가지고 있는 나쁜 점도 여럿 보여주고 있다. 반드시 필요한 씬이 아님에도 기왕 찍은 거니까 삽입해놓은 인상을 받는 장면도 적지 않아 러닝타임이 무려 127분이나 된다. 승철의 이야기가 그의 발걸음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것을 찍을 게 아니라 단서, 복선, 반전이라는 영화의 극적 장치를 기반으로 가지치기를 했으면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승철의 유일한 정붙이였던 가여운 백구의 비명횡사가 남긴 의미를 곱씹어 보면서 이 영화는 결국 스며들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그가 탈북자이든, 아니면 대한민국 태생이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탈북자를 경원시하는 우리를 탓하는 게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낯선 이를 흔쾌히 받아주는 곳은 많지 않다. 특히 대한민국은 더더욱. 그러기에 이들의 삶은 우리와 별반 다를게 없다. 우리도 늘 타인과 관계맺기에 부담스러워하지 않는가.


감독 겸 주연배우로 나온 박정범의 호연과 그의 패션이 인상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