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베니싱 - 어둠과 함께 사라지다

효준선생 2011. 4. 2. 01:04

 

 

 

모든 것들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영화 베니싱이 가지는 주제라면 보는 관객들은 도대체 저 어둠의 실체는 무엇일까가 궁금증의 정체였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어둠은 어디서 왔고 왜 사람들을 육체라는 현물마저도 사라지게 만든 것일까 사라진 사람들은 진짜 영혼은 살아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육신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영혼은 떠돌아 다니는 형국이라면 그건 특정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와 진배없어 보였다. 그럼 영화 베니싱은 포교를 위해 만든 영화인가. 영화 중간중간 그런 투로 언급이 나오긴 한다. 세상이 끝나면 다시 시작을 의미한다거나 마지막 마치 세상에 남자와 여자만 살아 남은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그들이 마치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상징한다고도 말할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인간들은 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우연히 그 타이밍에 불빛과 함께 있었던 자들만 살아 남았지만 그들의 운명도 어느덧 사라질때가 다가왔다는 설정. 아이디어는 좋다. 그런데 감독에 의해 꾸며진 살아남은 자들의 캐릭터가 다소 작위적이다. 골고루 다양한 케이스를 삽입하기 위해 불 또는 빛과 관련된 아이템들을 마치 호신용품처럼 지니게 하지만 여건상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웠다. 조명이 꺼지면 그것은 바로 배우들의 아웃을 의미하기에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적은 수의 살아남은 자들이어서인지 패자부활의 기회를 남발한 것이 아쉽다. 죽을 타임을 지키지 못하는 무리수를 두다보니 자꾸 삐거덕거리곤 했다. 


그리고 소멸이 화학적인지 물리적인지 애매하다. 예를 들어 세상의 전기와 통신, 그리고 기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것들이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설정하에서도 건전지를 사용하면 랜턴은 켤 수 있다는 것. 그 넓은 디트로이트에 발전기를 사용하는 곳이 허름한 술집하나라는 것도 의아하다. 뭐, 영화 세트의 한계라면 그것도 이해해 줄 수 있다. 그런데 배우들이 움직이면서 겪는 고충들이 큰 고민없이 그때그때 닥쳐서 만들어 내는 것 같은 설정은 이 영화를 매끄럽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는 모두 4명이다. 좀 얍삽한 이미지의 루크, 극장 영사기사, 간호조무사, 그리고 흑인 어린이. 졸지에 가족을 다 잃은 그들이 한 공간에 뭉쳐 있으면서도 그들은 정확히 그들이 해야 할 앞으로의 목표를 정하지 못한다. 물론 그 상황이 되면 서로 갈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좀 친절하고 당위성있게 그들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시키지 못했다. 영화속에선 빛이 이들을 구원할 유일한 방법이지만 햇볕이 아닌 이상 이들은 결국 인간이 만든 인공조명들을 활용해 연명해 나갈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빛은 어쩌면 함정이나 미끼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것들은 타이타닉처럼 제한된 조건하에 내팽겨쳐진 배역들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얻는 일종의 게임과도 같다.


또 하나는 이들 중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를 맞추는 것이다. 이 역시 퍼즐게임이다. 결과는 다소 뜻밖이지만 인류의 부활을 상징하려면 그 결론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정말 세상엔 이 둘만 남은 것일까.


낯선 소재의 영화의 장점은 궁금증을 자극하는데 있다. 어둠이 사위를 장악하고 그 어둠이 목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만 어디론가 사라지게 한다는 설정은 바로 뒷이야기를 알고 싶어지게 한다. 영화 베니싱은 마치 초자연적 불가사의한 일과 이를 종교적 철학적 가치관과 접목시킴으로써 반응을 이끌어내려고 한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이미 말한 종교적 가치관을 설파하는 장면에서는 마치 이 영화가 묵시록의 그것과 닮은 것처럼 보였다. 이 영화 비록 상상력을 동원한 가상의 드라마이긴 하지만 어쩌면 인류가 맞닥뜨려야 할 미래의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근데 최후의 생존자가 나나 당신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