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킹스 스피치 - 달변가보다 진정성이 있어야지

효준선생 2011. 3. 27. 03:01

 

 

영화 킹스 스피치는 작품 본연의 영양가와 완성도보다는 올해 아카데미 수상식에서 가장 효율적인 성과를 거둔 작품이라는 평가 때문에 안볼래야 안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영국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설명에 간략하게 나마 영국의 근대사를 훑어보고 극장으로 임했으며 이 과정은 극 내용을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소위 왕이라 하면 총명하기가 이를데 없고 카리스마와 기품으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대상으로 연상이 되지만, 요크공이라 불리던 이 남자(콜린 퍼스 분), 뭔가 부실해 보인다. 물론 체구는 당당하다. 네모지게 생긴 얼굴도 함부로 덤빌 상대는 아니다. 그런데 입만 벌리게 하면 그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말 그대로 말을 잘 하지 못한다. 역사적 인물들 중에 눌변으로 소문난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말보다 글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를 좋아했고 그래서 문인들은 입이 하나인게 다행이라고 느꼈다고도 했다.


세치 혀로 먹고 산다는 연예인과 정치인들중에도 눌변인 케이스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모두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달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입에서 튀어 나오는 말이 담고 있는 진정성이다. 거짓을 잘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침묵이 더 큰 마력을 발휘할 때도 많다. 이 영화 중반부에 히틀러의 유세장면이 나온다. 그는 달변가로 유명하다. 나치즘은 그의 입에서 절반은 완성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요크공에서 대중앞에서의 말하기는 그 어떤 것보다 겁나고 두려운 행위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 인간의 어눌한 말주변을 고치는 클리닉 과정만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마음에 담아두었던 상처들이 결국 그의 입을 막아세웠고 그걸 성인이 되어 누군가에게 고해성사하듯 이야기 하는 장면이 결국 이 영화가 하고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처럼 들렸다. 왕이 주인공이지만 그에게 인생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낸 사람은 타칭 언어치료사로 불린 호주출신의 로그(제프리 러시)였다.


그는 결코 기계적으로 요크공의 말주변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심리적인 공허감을 채워주는 데 크게 일조했다. 영국의 왕들 중에서는 이렇듯 상식적이거나 우리의 관념에서 그려지는 전형적인 왕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 물론 중국의 황제와 한반도에 존속했던 수많은 왕들에게도 적지 않은 핸디캡을 다들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수반한다. 남들이 볼때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무엇이 불행할까 싶겠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 이 영화 중간중간 잘 설명해주고 있다.


형이 미국의 이혼녀인 심슨여사와의 로맨스를 이유로 왕의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면서 창졸지간에 영국 왕의 자리에 오른 조지 6세, 눌변의 그에게 그 자리는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만약 단순히 말 잘못하는 것으로 자괴감만을 가졌다면 영국은 아마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손에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영화속에서는 많이 다루지 않았지만 20세기 초반 유럽을 무대로 한 세계대전의 회오리 속에서 그나마 영국이 “그레이트” 하게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힘이었을 것 같다.


누구나 한 두가지쯤 핸디캡이나 콤플렉스는 가지고 있을 터, 이 영화는 그걸 극복하기 위한 힘겨운 노력과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인복도 필요하다는 것. 무엇보다 느리면서도 힘이 들어간 그의 마지막 연설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였지만 결국 왕궁 사람을, 그리고 영국 국민을 움직인 왕의 한 마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