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히어애프터 - 남겨진 자의 슬픔은 죽음보다 크다

효준선생 2011. 3. 25. 00:54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칠 운명이지만 아무도 감내하려고 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 인간들의 살려고 하는 욕구가 인류의 발전을 견인했다고 하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마지막 단계다. 죽는 게 두려운 것은 어쩌면 살아 남은 자들의 고통이기도 하다. 죽는 사람는 죽음 이후를 인간의 감각에 의해 느낄 수 없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죽음 그 이상으로 크게 고통스럽다.


개중에는 자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고도 하지만 그게 죽은 것인지 잠시 혼절한 상태에서 헛것을 본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영화 히어애프터는 제목처럼 사후세계를 경험한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 남겨진 자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에 대해 비교적 차분하게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영화속에서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으면 종국에서는 그들이 한 곳에서 만나 서로의 이해를 구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미국에 혼자 사는 조지, 어린 시절 수술 후유증으로 타인의 영혼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지만 조지에게 그런 능력은 사람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그의 삶은 외롭고 쓸쓸하다. 프랑스에 사는 마리,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다가 쓰나미를 만나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뒤 죽음을 체험했다고 믿으며 환영에 시달린다. 그녀는 스스로의 경험을 책으로 써보지만 주변의 반응에 힘겨워 한다. 마지막으로 영국에 사는 마커스, 쌍둥이 형을 사고로 잃고 나서 매사가 의욕상실이다. 경제문제로 부모와도 떨어져 사는 그, 형의 모자를 쓰면 형의 체취를 느낄 수 있어 모자를 벗을 수 없다.


사후세계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이 영화는 공포스러운 심령세계나 죽음 자체에 몰두하지는 않는다. 죽음이라는 대상을 놓고 세 명의 캐릭터들이 겪는 이승에서의 심리적 방황에 조명을 맞춘다. 그게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시각효과를 노리는 등의 치졸한 방법은 동원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행위보다 심리적 공황을 두고 그들에게 벌어지는 일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서부영화의 전성기를 보낸 전설적 배우지만 요 몇 년간 그가 만든 영화들은 인생을 관조하거나 주변을 서서히 돌아보는 삶의 기록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영화 히어애프터가 진정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고희를 넘긴 노장배우겸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히 영상미에 기반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 뒤 세상에 대해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라며 궁금하게 만드는 힘, 바로 연륜이 아닐까 싶어서였다.


이들은 영국의 어느 도서전에서 조우한다. 그리고 이미 오래전에 알고 지내던 것처럼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아픔을 나누는 행위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것이지만 받아들이는 반응은 제각각인 이유는 인간은 결국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