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 한국 영화 명장이 한 컷 한컷 찍어내다

효준선생 2011. 3. 17. 01:31

 

 

 

絹五百紙千年이란다. 비단은 오백년을 가지만 잘 만들어진 종이는 천년을 간다는 말이다. 그만큼 좋은 종이의 내구력은 그 질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런 종이를 만든다는 것은 기계나 화학약품의 힘에 의존해서는 결코 안되면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듬뿍 담겨져야 나올 수 있다. 종이는 중국 채륜에 의해 발명되었다지만 한지는 그 수많은 종이 중에서도 최고라고 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한지 제작 장인들의 노고다.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의 백 한 번째 작품이다. 오랜 준비끝에 선을 보인 이번 영화에는 한국 한국적인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명제를 꾸준히 실천해온 감독의 열정이 이곳 저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전라도 일대를 로케하며 찍어낸 풍광은 드라마 내용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영화는 한지 제작과정을 심도있게 다루다 보니 얼핏보면 다큐멘타리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드라마와 다큐의 간극을 양쪽에서 당길 수 있었던 것은 다큐 감독으로 나온 강수연과 한지 제작을 서포터 하는 공무원으로 나온 박중훈의 역할이었다. 오랜만에 조우한 그들의 묘한 관계가 좀 달뜨게도 해지만 그 관계는 敷衍처럼 보였다. 박중훈에게는 자신 때문에 몸이 불편한 아내가 있어서이기도 했다.


한지라는 매개로 이야기를 꾸미고 그 배경을 아름다운 산천과 색감으로 채워 놓은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의 마지막 장면은 덕유산 자락 계곡이 비춰졌다. 맑디맑아 서늘함마저 느껴지는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정성의 한지 한 장을 얻으면 무엇을 해볼까.


영화에는 실제 한지 전문가도 다수 등장하고 영화인들도 각자의 배역을 맡아 카메오출연을 했다. 그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이 영화를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힌트가 될 것 같다. 임권택 감독의 아들과 아내,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몇몇 행정관료들도 엔딩크리딧에 이름을 올렸다.


디지털로 찍어서 그런지 색감을 표현하는 장면은 아름다웠다. 나비장을 천천히 찍어낸 장면은 그 중에서도 압권이고 자동차 안에서 달을 보며 천천히 드라이브 하는 장면도 매력적이었다. 전체적인 영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한국인이라면 꼭 보아야 할 영화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적극적으로 외국인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