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내 이름은 칸 - 그 남자가 보여준 용서와 사랑의 손짓(강추)

효준선생 2011. 3. 15. 00:42

 

 

 

세상 사람 누구도 원하는 인종이나 피부색을 선택할 수는 없다. 태어나 보니 무슨 인종이고 태어나 보니 어떤 피부색이었다. 그런데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와 같은 피부색과 종교를 가진 사람이 테러리스트라고 해서 나까지도 도매금으로 취급된다면 그 심적인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내 이름은 칸의 주요 情緖는 感傷이다. 주인공 칸의 경우에서 보이는 수준은 감동을 넘어서, 그를 둘러싼 사회적 백안시까지도 아우르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었고 그 효과는 막연하게 눈물을 흘리는 인간적 동감이 아니었다. 인종과 종교적 차별, 이지메, 특정 질병에 대한 인식, 전쟁에 대한 모종의 반응등이 한데 어울어져 이야기가 되고 주요한 내러티브가 되었다. . 앞서 말한 것처럼 테러리스트가 무슬림이고 특정국가 사람이고 거무잡잡한 피부색이라고 모든 인종의 용광로인 미합중국에서도 차별시된다는 것, 그 안에서 소통하고 융화하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칸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 자폐증 환자처럼 보이는 이 증세는 특정분야에 천재적인 소질을 발휘하지만 사회성이 다소 부족하고 움직임도 다소 부자연스럽다. 그는 유난히 노란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단어를 외우거나 물건을 고치는 데는 천부적인 소질을 보여준다. 그가 사랑을 얻는데 큰 역할을 한 것도 역설적이게도 이 소질이 상대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행복해할 것 같은 그에게 미국 911사건은 그를 비롯한 무슬림들에게는 새로운 위협이 되었다. 이 부분은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화 초반 그냥 좀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따로 불러 인격모독적 수사를 당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으며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그 길도 결코 순탄치 않았다.


영화는 로드무비인가 싶었지만 칸의 일상을 통해 한 인간의 행복과 용서가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칸과 주변인물들이 보여주는 몇 가지 정황은 낯선 곳에서 기득권의 질시를 이겨내고 그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하는지, 비단 미국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도 얼마나 많은 “칸”들이 와서 사는가.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은 정작 이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라는 이름표를 달며 사회적 차별을 받고 살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백인에 대해서는 무한한 동경과 선망을, 흑인과 같은 아시아인들에게는 비하와 모멸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는한 우리도 결코 칸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없을 듯 싶다.

 

칸과 그의 아내는 외모상으로 무척 아름답다. 겉모습으로 장애우처럼 보여도 순수함만큼은 그 어느 누구 못지 않다. 그가 뿌려놓은 사랑과 용서의 제스처는 이제 작은 싹을 틔우는 것 같았다. 그가 그렇게 꿈꾸었던 미국의 대통령 만나기가 성공했는 지 여부보다 그의 순수한 노력이 더 이상 그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묵직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127분이라는 인도영화 특유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한결같은 情調를 유지하는 점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구석구석을 훑어낸 아름다운 풍광도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