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 가보고 싶게 하는 대리만족

효준선생 2011. 3. 11. 00:30

 

 

 

 

 

몇 년전 아파트 단지안에 사는 일본인 가구를 위해 설치된 일본의 위성방송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나레이션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장면은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마치 김삿갓처럼 삿갓과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든 젊은 여성이 사찰을 돌아다니는 일종의 투어 형식의 다큐멘타리였다. 그동안 방송했던 것을 몰아서 보여주는 것인지라 무려 3시간동안 프로그램이 계속되었다. 나중에서야 그녀가 돌아다는 곳이 오헨로라고 부르는 일종의 순례기행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난 해 바로 일본 시코쿠의 오헨로를 직접 다녀온 한국 여성의 기행기록이 책으로 엮어 나왔다. 그런데 그 제목이 좀 발칙하다. 남자한테 차여서 시코쿠라니, 엥? 아무리 자극적인 제목이 유행이라지만 너무 사적인 내용이 아닌가. 물론 책을 집어 들고 한참을 읽어내려가면서도 분명 지은이의 사적인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아닌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제목은 저자가 아닌 오헨로 과정에서 만난 어느 여성의 토로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오헨로의 여정을 그대로 따라다닌다. 1번부터 88번까지의 사찰을 다니면서 납경이라고 부르는 도장을 받는다. 그러나 이 도장받는 행위는 어찌보면 요식일 지도 몰랐다. 고통이 수반되는 이 길위에 서는 이유는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하는데 최적이라는 점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사람, 앞으로 사회생활을 준비하려는 젊은이들이 주로 이 길을 택한다. 혼자임이 가치를 부여받는 시간. 그렇다고 이 책이 낯 선길만 걸으면서 중얼거리는 혼잣말만 적어놓은 무료함으로 가득 찬 책은 아니다. 중간 중간 만난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과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곁들여져 있고, 먹고 자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88개의 사찰에 대한 인상이 간헐적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그렇기에 이 책은 오헨로에 대한 가이드북이 아니라 개인적인 感傷文이라고 부르는 편이 좋을 듯 싶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래도 영상으로 한번 본 것인지라 비교적 수월하게 읽혔다.


이 책은 대리만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내가 만약 저 길위에 서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저자는 중간, 딱 한 곳에서 건너뛰기를 시도한다. 그리고 88번 사찰에 도착한 뒤 그 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부분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88개의 사찰을 돌아다니는 순례의 길, 자신의 마음에 작은 하자가 있었다면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不淨인 셈이다.


그 길을 다 돌고 나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3개월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다고 하는데,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게끔 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읽어볼 가치가 충분했던 셈이다. 그래서 다 읽고 나서 책의 무게를 대중했더니 꽤나 묵직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