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트렁커 - 나만의 안식처가 있나요?

효준선생 2011. 2. 5. 00:19

 

 

 

 

 

좁은 공간안에 갇힌 적인 있었나. 공간은 크기와 상관없이 그곳에 자발적으로 갇힌 것과 타의에 의해 갇힌 것이 현격한 차이가 있다.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스스로가 세상과의 격리를 위해 숨었다면 그곳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는 반면, 누군가의 겁박에 의해 갇힌 것이라면 그곳은 제 아무리 넓은 곳이라도 심적으로 1평짜리 감옥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안식처를 찾는데 본능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특히 어린 시절 대가족하에서 살았거나 다소 평탄치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경우 성인이 되어서 자신의 공간을 절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늘 자신의 동굴을 찾아 헤맨다고 하지 않던가.


신예작가 고은규가 쓴 트렁커는 이런 점에서 기발하면서도 그 내용이 씁쓸하다. 그 이유는 바로 세상에 이런 사람없을 것 같은 남자와 여자의 과거때문이다. 그들의 오늘은 조금 독특하면지만 특출날 것 없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여자는 유모차 판매원으로 남자는 빌딩의 밸런스를 검사하는 일을 한다. 소설 속에서는 여자쪽 직업에 상당히 많은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그녀가 보여주는 시니컬한 세계관의 표출일 뿐이다. 오히려 손님으로 등장하는 여러 아줌마들의 군상이 더 맛깔나 보였다. 한편 남자의 직업에 대해서는 작가도 잘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다.


그런 남자와 여자가 한 동네 주차장에 놓인 차 트렁크안에서 잠을 청한다는 사실은 기발하다. 집이 없는 노숙자도 아니다. 번듯한 집을 놔두고도 그들은 왜 굳이 이런 불편한 잠을 택한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그들의 과거사에서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시절 까만아이로 불리던 온두, 들피집에서의 집단생활은 마치 광신도 집단의 그것에 비유되었다. 폭력과 강간에 준하던 행위들이 서로에게 난무하던 생활환경, 그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고아나 다름없이 살던 그녀에게 육체적, 심리적 피난처는 옷장이었고 그 연장선이 성인이 된 뒤 자동차 트렁크로 바뀐 셈이다. 증조 할아버지때부터의 가정폭력에 시달려 온 름의 어린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한 남자가 되도록 강요당하고 거기에 크게 어긋나지도 않았지만 아버지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는 그에게 부정적으로 작용되었다.


소설의 전개는 현재와 과거를 오락가락하며 마치 털실로 스웨터를 짜는 것 같다. 남자와 여자의 현재와 과거의 네 개의 큰 축은 어린 시절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징검다리를 찾아 헤매는 게임처럼 보여졌다. 공교롭게 그들은 만나서 게임을 한다. 진실게임을 통해 과거로 들어갔다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기를 반복한다.


디테일은 좀 섬뜩하거나 잔인하기도 하다. 그렇게 사는 경우도 있을가 싶도록, 마치 경험이 투영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극복하기 위한 처방은 함께 길을 떠나는 것 뿐이다. 만약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닌 좁고 갑갑한 트렁커 생활을 마감하고 더 넓은 방으로 이전은 어땠을까 싶다. 사실 누구에게는 넓은 평수의 아파트도 감옥이 될 수 있겠지만.


소설 트렁커는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