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파이터 - 형제가 함께 꾼 챔피언의 꿈

효준선생 2011. 3. 9. 00:04

 

 

 

 

소년에게 어린 시절 프로복싱은 영웅을 바라다 볼 수 있는 몇 가지 루트중의 하나였다. 게임속 주인공이 아니라 나와 같이 숨을 쉬고 몸을 움직이고 특히나 수세에 몰려 지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 분투를 보여주는 장면은 최고의 압권이었다. 당시엔 한국의 프로복싱도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적지 않은 세계 챔피언을 배출해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유제두와 박종팔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를 내기했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보고 중학생 형아는 체급이 다른데 어떻게 싸우냐며 아랫 골목 동생의 입씨름을 한 방에 잠재웠다.


그럼 집으로 돌아와 신문 스포츠면을 들춰보며 복싱의 체급을 무거운 순서대로 나열해 놓고 외우기 시작했다. 슈퍼 헤비급부터 시작해 주니어 플라이급까지. 그걸 다 외우고는 아이들 앞에서 손가락을 접어가며 외우면 아이들은 우와 감탄사를 내지르며 따라 외우곤 했다.

한국 복싱뿐 아니었다. 프로복싱의 메카였던 미국 특히 라스베가스 특설링은 미묘한 곳이었다. 도박과 프로복싱. 그곳에 올라 상대방을 통쾌하게 때려 눕히던 선수들. 마빈 헤글러, 로베르토 두란, 토마스 헌즈의 대결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거기에 한 두 체급 아래의 슈가 레이 레너드는 그야말로 천재적인 두뇌박서였다. 그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소년의 프로복싱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대표적인 프로모터였던 돈 킹이 그들 사이에 있었던 것도 불현듯 떠오른다.


영화 파이터는 2류 복서인 미키와 전직 복서이면서 지금은 동생 미키에게 짐스런 존재로 전락한 디키의 물보다 진한 형제애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위에서 언급한 70, 80년대 미국 프로복싱의 역사 한 가운데 아마 이들과 비슷한 모습의 복서가 있었고 이 영화는 그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되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복서의 승승장구만으로 그리는 경기장 위주의 영화는 아니다. 그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 소외받고 반대로 관심받고 자신을 이용만 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가운데 가족은 분명히 자신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종의 감동 제시형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처음부터 감정의 폭을 넓혀가는 스타일의 친절함은 베풀지 않는다. 약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디키의 반사회적 일탈행위에 골머리를 썩히는 미키. 그 자신도 이혼한 아버지의 신세에 있으며 늘 가난으로 허덕이며 매니저이자 프로모터인 어머니의 독단적 행동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영화는 끝나기 30분 전까지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 안에서 만나고 부딪치고 깨지고 상처받는 모습을 비춘다. 분명 그들은 가족이지만 어찌보면 마치 원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치유의 방법은 오로지 하나가 아닐까 싶긴 했는데, 늘 2류 복서 신세였던 미키의 챔피언 전, 그리고 왕년에 전설의 복서 슈가 레이 레너드와 한판 붙었다는 것을 평생의 자랑으로 삼는 형의 조력은 끝내 뭉클함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더 이상 챔피언의 꿈을 꿀 수 없는 형, 그리고 그런 형을 대신해 최고의 자리에 도전하는 형제는 같은 꿈을 꾸었고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아름다웠다. 


세상은 한물간 인사에게는 불친절하다. 영화 초반 마치 전직 복서의 재기를 돕는 취지라며 찍어간 영상물이 약물에 찌들어 인간말종으로 변해가는 모습으로 방송되는 모습에서, 우리의 복싱영웅은 지금 다 어디에 갔을까가 궁금해졌다. 연극 <이기동 체육관>의 관장처럼 펀치 드렁크에 시달리며 죽는 날만 기다리는지, 아니며 슈가 레이 레너드처럼 복싱 영화에 카메오 출연을 하며 존재감을 알려주든지, 선택의 그들의 몫이지만 애틋하다.


소년의 영웅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지 못한다.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라는 평을 받았던 박찬희 선수를 좋아했던 소년, 그리고 챔피언이라는 타이틀을 눈앞에 두고 머나먼 이국땅에서 스러져간 복싱 영웅들과 이 영화를 함께 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이 영원한 파이터였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직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