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 이젠 현빈을 떠나 보내야 할 시간

효준선생 2011. 3. 7. 00:02

 

 

 

현빈의 입대 전 마지막 상영작인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작품성 보다 베를린 영화제 공식경쟁작으로 독일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다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보름전 만추가 개봉했을때 만큼 호들갑스런 마케팅도 없이 조용히 개봉된 이 작품은 현빈이 언급했던 대로 진득한 인내심을 팝콘과 콜라보다 더 먼저 준비해야했다.


그런데 간혹, 그런 진득한 인내심은 기분 묘한 알싸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워낙 느린 영화라는 소문이 나서 아예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극장 구석 빈자리에 앉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래 영화가 느긋한지, 아니면 내가 더 느긋한지 시합이라도 벌일 자세였다. 물론 내가 이겼다. 생각지 못한 순간 영화의 엔딩이 올라가자 남들은 수런수런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방금 전 스크린을 장악한 맛있어 보이는 파스타를 연상하며 냄새와 영화속 그 집 공간에 취해있었다.

 

영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시작과 동시에 정확하게 10분동안 롱컷이 등장한다. 자동차에 앉은 남녀, 현빈과 임수정이다. 부부인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출장과 이별이다.

하나의 초점, 하나의 씬이 지나서야 오프닝을 알리는 제목이 뜬다. 느림의 미학을 즐기겠다는 호기심이 이미 발동해야 하는 지점이다.


영화의 시간은 오전부터 저녁무렵까지다. 밖에는 줄기차게 비가 내리고 동탄에 있는 고급 타운 하우스는 그들의 집이자 집없는 사람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이 영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마치 분양광고처럼 집 구석구석을 훑는다. 소품과 인테리어도 흠잡을데가 없다.     출판일을 하는 아내 설계사인 남편에게 더 이상 아쉬울 만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아내는 집을 떠나겠다고 한다.

 

이 지경이 되면 남자는 소리를 치거나 심지어 폭행을 가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남자는 여자의 짐을 싸주거나 커피를 끓여주고 심지어 아내가 피운 담배를 치워주려고 한다. 궁금해진다. 혹시 막판에 내재한 악마성이 폭발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려는 것은 아닐까 궁금증이 조금씩 정도를 높여가는 도중, 감독인 이윤기의 전작 여자, 정혜의 히로인 김지수가 깜짝 등장했다. 이 영화도 전작의 문법을 따라가려는 걸까 의심의 눈초리는 거둘 수 없었다. 정중동은 그들이 물러간뒤에도 계속된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감은 시간이 흐를 수록 높아갔지만 두 배우가 보여주는 행위는 시속 1m나 될까 말까한 이동속도로 점점 느려졌다. 관객들은 이런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다. 현빈같은 키크고 잘생기고 직업도 좋고 그 나이에 멋진 집도 있는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찾아가려는 여자가 이해가 안된다. 현빈의 배려에 혹시라도 다시 돌아오지나 않을까


난 좀 다르게 생각했다. 현빈정도라면 가겠다는 사람 잡지 말고 혼자 살아도 좋겠다. 여자보다 더 꼼꼼하게 집안 살림도 하고, 자기 직업도 있겠다. 하드웨어도 멀쩡하겠다. 무엇이 걱정이겠나. 사람들은 각각의 처지에 영화속 내용을 투영하는 버릇이 있다.


헤어짐을 주제로 그 짧은 시간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늘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이제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나는 요즘 대세인 현빈의 느릿한 걸음걸이에 지쳐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도 힘들어 한다.


그동안 늘 속도전에 우리를 영화의 템포에 맞춰갔다면 이 영화는 마치 리듬감 좋은 스윙 음악에 취한 듯 그렇게 감상하면 좋다. 배경음악이 과소하다는 것이 유일한 단점으로 보이긴 하지만 엔딩에 나오는 음악을 다 듣고 나서면 여운은 남을 것이다. 싸우고 소리지른다고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랑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에게 “알잖아” “괜찮아” “미안해”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