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타이머 - 우리 사랑 마음이 닿는 곳으로...

효준선생 2011. 2. 23. 00:55

 

 

 

 

사랑하는 것 같아 사귀자고 하고 만나고 투닥거리고 그러다 제 인연이 아니다라는 듯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자신의 인연임을 재단하며 사람들은 산다. 사랑과 관련된 수많은 레토릭과 메타포들, 아마 인간이 뽑아 낼 수 있는 언어에서 가장 많은 단어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그런데도 늘상 사람들은 제 곁에 있는 사람을 온리 유로 보지 못하고 갸우뚱거릴 때가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사랑이 아닌 정으로 산다는 말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게 나쁜 말은 아닐텐데, 사랑에 목매고 혹시라도 사랑이 식었나 싶어 자꾸 주위를 둘러본다.


인연, 반려자, 짚신 한짝을 찾아 늘 사냥감을 찾는 짐승처럼 어슬렁거리지만 제 짝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많은 경우 잘못된 인연임에도 자꾸 자신의 인연일거라고 확신을 하며 그 인연의 끈을 칭칭 동여맨다. 그런데 그 줄이 타인의 인연의 허리에 매달려있는 것이라면? 황당하겠지만 대부분 그렇게 만나지 않을까 지치면서도 귀찮아서도 그것도 아니면 도장 하나 쿡 찍어 버리고는 아주 손쉽게.


그래서인지 사랑이 조금씩 깊어지면 연인들은 점집을 찾는다. 물론 그 마음에 불편하고 불안감이 없을 리 없다. 혹여 네 짝이 아니야 라는 말이라도 들을 손, 부들부들 떤다. 겨우 복채 한 장 값에 연인들은 긴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하다고 속삭여 왔으면서도 평생 처음 보는 점쟁이 말 한마디에 헤어짐까지 각오한다는 것이 우습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그때까지 조금이라도 그(그녀)와의 사이에서 삐그덕거림을 느꼈다면 바로 이래서였구나 하는 핑계를 댈 것이고, 궁합도 좋고 부부상이라고 하면 만천하를 얻은 것처럼 행복해할 것이다.


궁합을 본다는 것, 결혼 전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한국에서만 유난떠는 그런 것 아닐까 싶었는데 영화 타이머를 보니 서양 아해들도 상당히 이런데 관심을 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타이머는 말그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조우할때까지의 시간을 표시해주는 손목에 테이핑하는 기계다. 디지털 시계처럼 길죽한 LED에 날자수, 시, 분, 초가 표시된다. 그런데 이 기계가 망측한 것이 나의 반쪽도 마찬가지로 타이머를 설치해야 효력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 손목엔 아무 표시도 없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 다 한다는 타이머중에 왜 내 것에만 아무 표시가 없나를 생각하면 울화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타이머의 등장인물은 좀 복잡하다. 맏이 우나. 그리고 그녀의 이복 여동생 스태프, 그리고 이제 열 네살이 된 막내. 우나가 바로 손목에 아무 표시가 없어 심술 나있는 주인공이고 그녀 앞에는 무려 8살이나 어린 마트 캐셔 겸 인디 밴드의 드러머 마이키가 있다. 물론 여동생도 남자를 찾아 헤매고 심지어 청소년에 불과한 막내 꼬마도 어느새 타이머의 신봉자가 된다.


기성세대라 할 수 있는 엄마의 사랑의 조언도 한 몫 하지만 어쨌든 등장인물들은 인연을 찾아 말 그대로 헤맨다. 서로의 타이머가 작동한 것은 막내뿐이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고 대신 첫째와 둘째의 언매치한 러브 매치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진행될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타이머가 없는 경우, 타이머를 떼어버린 경우등, 예측 가능한 경우를 이리 저리 짜맞추지만 깔끔하게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심지어 서로의 타이머가 작동하기 시작하면서도 처음 만난 사람끼리 어떻게 정감을 나누냐고 하는 모습에선 사람의 마음이, 어찌 기계적 운명짓기에 휘둘릴 수 있나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결말은 묘한 암시를 하고 있으니...인간의 짝지기는 기계의 힘이라도 빌려야 가능한 것일까


짚신도 제짝이 있고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세상에서 제 반쪽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헤어짐이 잦은 시대라면 이들의 제짝 찾기는 서툴러도 너무 서투른 게 아닐까 당신 옆에서 곤히 잠든 반쪽을 유심히 살펴보라 손목에 비록 타이머를 찼던 흔적은 아마 없을 테지만 마음속의 타이머가 작동하는 순간 둘은 인연이라는 신념 혹은 착각을 전제로 사랑을 시작했던 때가 있지 않았는가.


죽는 날까지 사랑하며 살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정이라는 놈, 그게 여전하다며 투닥거리기만 하지 말고 토닥거리면서 살아봐야 않겠나. 손목에 남아버린 타이머의 흉터도 보기 싫다. 마음이 닿는다면 그게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