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센티미엔토 - 여류킬러, 정신줄을 놓다

효준선생 2011. 2. 22. 00:01

 

 

 

 

영화 센티미엔토는 제목과 달리 일본 동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시작부터 시각적인 자극을 선사했다. 여성의 나신위에 올려진 스시, 유럽계로 보이는 양복 남자들은 뭐가 좋은 지 낄낄거리며 한 점 한 점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 남성은 못내 못마땅한 투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영화속 인물의 축은 두개로 나뉜다. 딸은 실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고 사장은 딸의 소실을 애틋해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 축은 소리채집가와 모호한 정체의 여자, 류.

영화 중반까지는 소리채집가의 눈과 목소리를 통해 이 두개의 이야기축이 만나기 전까지의 이런 저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결국 그들의 만남이 이야기의 시작인데 그 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이 자살한 여자의 남자친구이자 류가 제거해야 하는 타켓이자 와인샵 주인인 스페인 남자다.


이렇게 해서 이야기의 접점은 찾았는데 문제는 냉정해 보이도록 갖은 장치로 치장을 해놓았던 류라는 여성의 정체성에 있었다. 그녀의 말 중에 킬러는 타켓을 왜 죽여야하는 지 보다 최근 사진인지, 주소는 맞는지, 그리고 착수금은 정확한지에 더 관심이 있다는 말이 와닿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한 그녀가 자신의 타켓에 접근하는 방식이 좀 이상해보였다. 한방에 끝내지 못하고, 아니 준비해간 소음총은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채, 몸과 마음을 주고 만다. 그것도 킬러의 방식이라면 수긍을 할 수 있겠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영화는 초반에 보여준 아름다운 컬러 비주얼의 장점을 스토리텔링으로 야무지게 이어나가지 못하고 자꾸 한 눈을 판다. 이 영화는 스페인 감독과 배우 한 명을 투입한 일-스페인 합작영화인지라 스페인으로 대표하는 서양인의 관점이 뒤로 갈수록 사적으로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건 일본 문화에 대한 형이하학적인 관음증으로 보였다. 성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일본의 문화, 시각적으로 예쁘다는 평을 받는 일본의 먹거리, 그리고 만화와 영화에 대한 호기심, 남자는 일본이 좋다고 수시로 이야기 하지만 그건 그들이 보는 일종의 호기심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토록 냉철해 보이는 여자 킬러 하나를 그저 몸이나 주는 거리의 여자처럼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킬러는 본연의 일을 마무리 짓지도 못했고, 딸을 잃은 사장의 바람도 이뤄지지 못했다. 사장을 대신해 복수를 한 회사 직원에게만 올가미를 씌우고는 막을 내렸다. 사장은 말했다. 자신의 금지옥엽은 죽었는데 그 자식은 여전히 숨쉬고 밥먹고 살아있다고.


스타일리쉬한 느와르 영화를 표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을 대상으로 호기심만 충족시키고 그들의 문화만 맛보기로 핥아먹은 것 같아 많이 안쓰러웠다. 만약 그게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어쩌면 비난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성격파 배우 기구치 린코의 일차원적인 소비만이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