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127시간 - 본능적으로 살고 싶었어요

효준선생 2011. 1. 15. 13:05

 

 

 

 

얼마전 극장에서 신작 팜플렛을 보고 집어 올리다 손가락 끝을 베고 말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 사려깊지 못한 제 잘못이 크지만 종이에 손을 베기는 참 오래된 일입니다. 일자로 베인 자국에서 약간의 피 맺힘이 보이고 물로 닦아내고 휴지로 꼭 쥐고 있었더니 약간의 아림은 참을 만 했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더군요.


영화 127시간은 협곡 사이에 떨어진 채 옴쭉달쭉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한 남자의 사투와 삶에 대한 진지한 관조가 빛을 발하는 수작입니다. 얼마전 본 베리드와 비교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베리드는 가상의 상상력으로 최악의 폐소공포와 거기서 파생되는 외부와의 소통문제를 다루었다면 이 영화는 그보다는 공간적인 여유는 있지만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내어야만 살 수 있는 극한의 조건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유라는 말을 썼지만 하늘이 보이고 땅을 밟고 있다고 여유는 아닙니다. 눈을 뜨고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함부로 가볍게 볼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제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몸을 운신할 수 있다는 것과 팔 한쪽에 돌덩이에 끼어 꼼짝 할 수 없다는 것은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영화는 이 남자가 자신의 오른팔을 스스로 절단하기 직전까지의 심리적 변화와 주의의 환경 이런 것들을 플래쉬백과 환청, 환각등의 현상을 통해 산다는 것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또한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과도한 테크닉이나 상상력도 배제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고 자신이 재난 구조 봉사단원으로 일할 만큼 튼튼한 체력의 소유자지만 불가항력앞에서의 그는 그저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금요일부터 5일이 지난 화요일의 시간 동안 그는 주어진 여건과 환경하에서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살릴 방법을 강구합니다. 그래도 안된다면 그것은 절망이 아니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의 극심한 고통도, 앞으로 사회생활을 해가면서 반드시 필요한 오른팔과의 생이별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함 그 자체였습니다. 보는 관객들도 팔을 잘라내는 장면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더군요. 그렇다고 이 영화를 잔인하고 무서운 영화로 보면 안됩니다.

산다는 것에 대해 영화가 끝날때까지 관객에서 계속 물음을 던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5일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살아서 빠져나갈 궁리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스치듯 지내왔던 일들, 사랑했던 가족과 옛 애인, 그곳에 빠지기 직전에 만났던 여자들까지. 그리고 제한된 공간임에도 식욕과 성욕은 그가 살아있는 실체임을 말해줍니다.


인간은 언제나 아름답고 예쁜 것만을 따를 수는 없을 겁니다. 언제 추하고 더러운 상황하에 놓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고 그만두자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남자처럼 팔을 부러뜨리고 근육과 신경을 잘라내는 엄청난 고통을 택했을까요. 영화 말미에 실제 주인공의 모습이 비춰집니다. 팔 하나가 없지만 열심히 수영과 등반을 즐기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나약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강인한 존재임을 다시 한번 믿게 해줍니다. 지금 보이지 않는 돌덩이가 우릴 누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힘껏 밀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