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앙드레 마티유 - 천재 음악가의 정서적 결핍

효준선생 2011. 1. 11. 00:58

 

 

 

앙드레 마티유는 프랑스계의 캐나다 출신 음악가의 이름이다. 20세기 초반을 살다간 천재적 소질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였는데 동명의 영화는 환희와 갈채로 가득찬 유년기와 군중속의 고독과 부모로부터의 속박에서 고민하며 생을 마감했던 30대 즈음을 조명한다. 그에게 노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겨우 서른 아홉의 나이에 절명하고 말았으니 그의 사후 100여편의 작품을 통해서 그를 만나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쉬움이 더욱 진하게 배어나온다.


그는 천재라는 칭송을 듣고 유년기를 보낸다. 프랑스, 캐나다, 미국을 돌아다니며 어른들의 성원을 공기삼아 호흡하며 여러 언론매체로부터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극찬을 받는다. 하지만 영화 중반, 그의 엄마가 파이팅의 의미로 그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에서부터 그의 인생은 조금씩 뒤틀리게 한다.


잘나가는 스포츠 스타 뒤에는 치맛바람, 바짓바람이 있다고 하는데 앙드레에게는 그의 어머니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독선적이고 아집으로 똘똘 뭉친 그의 어머니는 앙드레의 인생에 반드시 있었어야 했지만 물러날 줄도 아는 그런 현명한 어머니 상은 못되어 보인다. 끊임없이 속박하고 닦달하는 모습이 마치 요즘 어린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모는 학부모와 별로 달라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이 영화 앙드레 마티유라는 천재적 음악가의 일생을 다루지만 그의 어머니의 역할이 점점 크게 작용을 하면서 후반부를 보는 내내 답답함을 느꼈다. 술과 담배가 연신 이어지고 그의 연애도 일도 헝클어지는 모습이 투영되면서 이미 알고 있었던 결말에 점점 다가섬이 느껴졌고 다 피우지 못했던 그의 재능이 아깝게만 보였다.


연주자로 남을 것인지 작곡가로 남을 것인지 갈등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채 결말을 내리지도 못한 듯 하다. 왁자지껄한 바에서 취객을 상대로 격렬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러나 그 장면은 그의 삶에서 종지부와 같은 것이었다. 땀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과 건반을 날아다니듯 한 주법은 신기에 가까웠지만 그의 이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한국의 그냥 그런 영화팬의 입장에서는 저 남자, 불행해 보인다라는 평가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영화 음악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클래식 레파토리가 많이 등장한다. 특히 어린 앙드레로 나온 배우의 손놀림은 화려한 그 자체였고, 쉴틈을 주지 않고 선보이는 여러 레파토리는 이 영화를 보다 윤택하게 만들었다. 대작의 풍모는 아니었지만 불행한 삶속에서 제 명에 가지 못한 것 같았던 어느 음악가앞에서 자못 숙연해지는 것은 역시 부러움이었는지 아니면 반면교사이었는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비록 내 자신이 음악가는 아니지만 지금의 난 제대로 인생을 연주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