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심장이 뛴다 - 늙은 애미의 한 없는 사랑

효준선생 2010. 12. 28. 02:57

 

 

 

작년에는 문화계에 엄마라는 소재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던 해로 기억된다. 특히 한국에서 엄마라는 소재를 한 가운데 두고 절절한 이야기를 꾸며 놓으면 대개는 손수건을 꺼낼 준비를 하게 된다. 다시 말해 엄마는 왜 그토록 눈물을 흘려야 하는 恨의 이미지로 치환되는 것일까 받은 것 보다 무조건 주는 이미지의 엄마, 그 애틋한 사연이 올해를 접고 새해벽두에 선보일 영화 심장이 뛴다의 “주인공”으로 다시 등극했다.


심장병을 앓는 소녀의 엄마, 뇌사 상태에 빠진 엄마의 아들, 그들은 어떻게 만나게 되고 왜 그토록 서로를 피하거나 갈구하려는 것일까 장기이식이라는 쉽지 않은 문제를 가운데 두면 누구나 갈등을 한다.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조건하에 죽고 사는 타이밍도 맞춰야 하고 또 신체 반응조건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조건을 맞는 사람을 찾았다면 그건 그 환자의 가족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동앗줄인지도 모른다. 상했는지 성한지는 당겨보아야알 수 있는 것이지만 간혹 인간이기에 해서는 안될 짓을 하고도 자기 합리화를 내세울 수도 있다. 이 영화에서도 뇌사자에게 장기이식을 시도하기 위해 환자를 병원에서 강제로 데리고 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의사가 “업자”에게 연락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도 등장한다.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구는 살려야 하고 누구는 죽어도 되는 생명은 없다. 다들 살기위해 오늘도 몸부림치면서 살고 억울해도 살고 고달파도 산다. 그런데 내 목숨을 달라고 하니 어찌해야 하나. 비록 본인은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하나뿐이 자식을 위해 해줄 게 없구나. 영화가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마치 추적자들처럼 달리고 달리지만 숨어있는 나레이터는 따로 있었다. 그녀가 이 영화의 방점을 찍으리라는 느낌이 왔다.


누군들 목숨 귀하지 않은 자 있겠나. 이제 여덟살밖에 안된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미래적이긴 하지만 인륜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몰입되고 있다. 아이가 귀여워서도 그 엄마의 혼신의 구원이 애틋해서도 아니다. 아들을 위해 몸의 일부를 내주었던, 아들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주고 세상을 하직하려는 그 늙은 어미의 결단이 숭고해서였다.


이 영화, 김윤진과 박해일의 연기도 뛰어나고 조연의 힘도 빛을 발했지만 거기에 눈길주기 보다 결국 이놈의 세상,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이 가장 고귀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있음이 더욱 크게 보인다. 그걸 깨닫지 못하고 “줄 거 주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았데요...하하” 이런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해 보인다. 부모된 마음, 부모가 되어봐야 비로소 안다 하는데, 이 영화는 연인이 아닌 부모님과 함께 봐야 가슴속 깊이 느꺼워질 것이다.

 

소녀가 나중에 크면 알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양아치 같은 아저씨의 엄마가 자신을 위해 준 선물을, 아들이 살았던 화려한 강남대로변과 엄마가 살았던 무허가 판잣집촌 구룡마을을 함께 찍어낸 이 영화의 로케의 대비가 유난히 세모의 밤을 쓸쓸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