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러블리 스틸 - 언제나 그자리에 있던 사랑이었는데

효준선생 2010. 12. 19. 01:30

 

 

 

 

처음엔 그저 그런 노인들의 그레이 로맨스인줄로만 알았습니다. 노인들도 충분히 사랑을 나눌 자격이 있다는 관점에서 그린 영화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몇 해전에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를 볼 때와 비슷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정우성과 손예진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겠지라고 보기 시작했다가 상당히 오랜 여진이 남은 경우였습니다.


우린 왜 사랑을 늘 만남, 지속, 헤어짐 그리고 그 과정의 눈물과 웃음으로만 기억할까요? 다른 요소들도 많은데 사랑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그 카테고리안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비슷한 내용을 점철되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사랑이야기지만 얼추다 그렇고 그런 내용인지라 보고 나면 대체 어떤 영화를 본 것인지 구분이 안 갈때도 있습니다.


영화 러블리 스틸은 기억에 좀 오래 남을 영화 같습니다. 그 이유는 그냥 말랑한 노인의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싱거웠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할아버지가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사랑은 좋은 것이구나라고 생각하던 차에 반복적으로 보여주던 뉴런의 카오스가 조금씩 의미를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영화 초중반을 거치면서 장치에 자꾸 시선이 가게 됩니다. 할머니가 지니고 있는 약통, 하지만 할머니는 아픈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사랑의 카운슬러를 요청했던 사장님이 할머니의 딸과 같이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할아버지가 사는 집은 구조적으로 썰렁합니다. 장식도 별로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크리스마스를 보낼 생각에 들떠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포즈를 할 생각에 흐뭇하기만 합니다. 카메라가 클로즈업해서 잡은 침대위의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찌나 해맑아 보이는지, 이제 할머니의 오케이 사인만 기다리면 될 듯 싶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림을 앞에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예사롭지 않습니다. 분명 어느 병원에서 본 듯 합니다. 구상화가 아니라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분열의 징조를 보이는 환자들이 그려내는 그림 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는 많은 아픕니다. 그럼 새로 시작한 사랑은 어떻게 하냐구요?  다들 그걸 걱정합니다. 할머니가 안되었다고. 하필 아픈 할아버지를 만나는 바람에...


그러나 영화는 마지막 반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요 며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랐던 사랑은 할아버지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들입니다. 늘 곁에 있었음에도 할아버지는 몰랐던 겁니다. 그게 할아버지를 한순간에 고통으로 몰고 간 치명적 아픔이었습니다. 아니 한순간이 아니라 꾸준히 진행되었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습니다.


사진속 인물들을 알아보는 것으로 할아버지의 인지속의 사랑은 막을 내리려는 모양입니다. 머릿속의 지우개가 쓱싹쓱싹 기억을 다 지워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기 직전 환자들은 희멀건 웃음을 짓는 다고 합니다. 유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릅니다. 자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영화 마지막이 무척 슬픕니다. 더 슬펐으면 눈물이 흘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담담하게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머릿맡에 놓인 자명종 시계가 울리면 꿈에서 깨듯 그렇게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올드 팝도 여러 개 나오고 눈도 내리면서 겨울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춘 영화입니다. 노인들의 삶이 나랑 무슨 상관이냐는 치기만 뺀다면 적지 않은 생각거리를 남겨줄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나이들게 마련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