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백수알바 내집장만기 - 이태백의 희망은 현실이 되었다

효준선생 2010. 12. 18. 13:07

 

 

 

 

 

한때 대학을 졸업하면 당연히 번듯한 회사에 들어가서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꿈도 꾸지 못할 상식이지만 그렇게 먼 과거의 이야기도 아니다. 최소한 98년 IMF시대가 한국에 도래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대학생들은 졸업후 진로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신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고 권력에 맞서며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냈다. 그럼에도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회사들은 이들을 자신의 일원으로 충원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20% 정도 잉여인력을 더 뽑아들였다. 적응하지 못해 그만둘 인력까지 감안한 것이었다. 실제로 입사후 채 1년도 못되어 그만두는 신입사원도 적지 않았고 자신의 적성이나 사풍에 맞춰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삭풍이 몰아친 뒤 채용시장은 급변했다. 안정된 일자리에 안주하던 기존의 직장인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라는 딱지를 달고 몇푼 안되는 퇴직금을 받아들고 거리로 나서야 했으며 이후 취업시장은 더 이상 훈풍만 불던 그런 널널한 장터가 되지 못했다. 하필이면 그즈음 취업의 문을 두드리던 99년 졸업생부터 이태백이란 자조어린 신조어의 희생양이 되었고 운이 좋아 입사한 경우에도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소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소설 백수알바 내집장만기는 비록 일본의 청년백수의 성공적인 취업기를 다룬 이야기지만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주인공 세이지는 어렵사리 입사한 회사를 아주 쉽게(?) 때려치우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큰 고민도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고 그것도 조금만 어깃장이 나면 때려 치우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병환은 그를 한층 철이 들게 했고, 늘 마찰을 일삼던 아버지와 유대는 그를 한뼌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덤덤하게 사는 세이지, 그리고 어머니의 병환으로 병구완을 하면서 느끼는 자잘하면서도 현실적인 느낌을 주로 다루었고 두 번째는 그렇게 깨달은 그가 전보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면서 부딪친 일본 취업시장의 현실을, 세 번부분에서는 규모도 작고 작업환경도 거칠기만 한 소형 건설사에 취업하면서 그가 보여준 적극적인 모습들, 네 번째는 어쩌면 앞으로 반려자가 될 여성과의 만남, 그리고 주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부분에서 그의 가정사를 너무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느낌이어서 쉽게 지친 감도 없지 않아 있다. 진행속도가 느려서 도대체 언제 집을 짓는 (?) 이야기가 나올지 자꾸 뒷부분을 들추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와의 의견충돌, 거기에 누나의 조언이 겹치면서 백수 청년 세이지의 본격적인 활약이 펼쳐지면서 이 소설은 아연 활기를 띄게 된다.


이 소설에는 아직 사회경험이 일천한 청년의 호기와 비록 큰 자리에 있지는 않지만 굳굳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업을 행하는 아버지와 현장 근로자의 조언이 상당히 비중있게 다뤄진다. 만약 이 이야기들이 무조건 세이지의 일방적이 사고가 들어맞았다면 개연성부족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가 생각하고 기획하는 일들이 모두 성공을 한다는 것은 너무 과장된 설정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앞길에서 간혹 달고 간혹 쓰디쓴 조언을 해주는 인생의 선배들은 책을 읽는 내게도 그들의 부재를 아쉬워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후반에 등장하는 어쩌면 세이지의 인생 동반자가 될 마나미의 존재도 분명 요즘 여대생들에게 귀감이 될 듯 싶었다. 여성이지만 험한 직업도 마다 않으며 학벌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아름답게 보였다. 비록 그녀의 얼굴이 캐리커처나 사진으로 나온 적도 없지만 분명 그런 측면에서 세이지에 호감을 불러일으켰을 듯 싶다.


이 소설은 현재 일본에서 인기가수 출신 배우를 발탁해 드라마로 방영중이라고 한다. 동영상을 잠시 보니 책에서 언급된 이야기들이 얼추 비슷하게 등장한다. 아버지역에 내가 좋아하는 다케나카 나오토가 등장한다.


이 책을 지금 이태백의 신세를 한탄만 하면 방구들과 씨름하는 청년 백수들에게 권하고 싶다. 또 자신의 미래에 대해 선명한 꿈 한번 꿔보지 못한 입시를 마친 대학 신입생에게도 권하고 싶다. 또 루틴한 일상에 지친 중년에게도 권하고 싶다. 반드시 집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계기가 될 듯 싶다. 

 

** 이 글을 예스 24 블로그에 올렸는데 지지난주 이주의 리뷰로 선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