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토일렛 - 할머니 눈엔 모두가 가족

효준선생 2010. 12. 13. 00:01

 

 

 

 

한국에서는 잘먹고 잘산다는 개념의 웰빙이 많이 알려졌지만 로하스라는 컨셉이 더 멋져 보입니다. 입에 맛있는거 들어가고 좋은 옷 입을 수 있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簞瓢陋巷이라도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일본의 여류감독 오기가미 나오코는 소위 슬로 라이프 무비라는 독특한 컨셉의 영화를 시리즈로 내놓으면서 그녀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층을 두텁게 만들고 있습니다. 무엇이 슬로 라이프 무비인가요? 한국에서도 느리게 살기라는 화두가 상당히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켜 지방 몇 곳에는 그런 종류의 마을이 형성되기도 했답니다. 청산도, 담양등지에...


그 말은 그만큼 현대인에게 조급함을 떨쳐 내려면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야만 된다는 이야기가 될테지만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그저 두어 시간 극장에 들러 영화 토일렛 같은 슬로 라이프 무비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는 듯 싶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스탭과 주연 배우가 일본인들임에도 이국적인 냄새가 물씬납니다. 배경은 미국인 것 같은데,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의 구조와 세트는 일본 것 같기도 하고요. 남매로 나오는 배우들도 잘 보면 논노나 앙앙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일본+서양의 어느 나라의 혼혈처럼 보입니다. 패션 스타일로 그래보입니다.


이야기 구조 역시 동양에서 주로 말하는 가정과 가족의 가치를 다룹니다. 하지만 그 주장은 결코 윽박지르거나 거칠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메타포나 레토릭으로 가득차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내용으로 된 것도 아닙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부드러우면서도 수긍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감독의 페로소나나 다름없는, 그녀의 모든 영화에 등장한 모타이 마사코의 꽉 다문 입에 있습니다. 그 흔한 감탄사나 큰 동작도 없이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월등합니다. 영화는 좀 제 잘난 맛에 사는 둘째 레이의 눈과 입을 통해 풀어가는 방식인데 그 때문에 관객은 그가 주인공이고 빠져서는 안될 인물로 혼동하게 되죠.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주인공은 레이도, 나머지 두 남매도, 죽은 엄마나 할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이기에 서로 의심할 필요도, 오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이 영화의 보이지 않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안경>이라는 영화에서 팥빙수가 참 달달하게 등장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시와 교자가 그 역할 이상을 해냅니다. 아무것도 아닌 음식물이지만 스시는 할머니와의 소통을 위해, 교자는 손자와의 소통을 위해 할머니가 준비하는 일종의 소통의 소구로 등장합니다.


또하나 주목할 것은 첫째 모리가 앓는 공황장애라는 질병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피아노 하나는 튿출나게 잘 치는 그가 특정 상황에 몰리면 적응을 하지 못하는 일종의 심리적 질환을 알고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 치유 방식이 독특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네명은 모두 현대인, 좁게 말하자면 현대의 일본인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보입니다. 같은 옷과 프라모델에 집착하는 둘째, 히키코모리급 행동을 보이는 첫째, 제멋대로인 셋째,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할머니까지...비록 배경은 서구의 어느 마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본의 그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숫자 3,000에 매우 집착합니다. 프라모델의 가격과 비데의 가격과 자동차 수리비와 화재 보상금, 유전자 검사비도 모두 3천이랍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죠. 거기에 엔티크하기까지한 어머니의 재봉틀, 첫째의 그랜드 피아노, 그리고 실뜨기등등 추억을 자극할 만한 소품들이 대거 등장합니다. 근데 제목으로 나온 토일렛은 이 영화에서 무슨 의미로 나옹 것일까요?


일본특유의 옥시덴탈리즘을 은연중에 내보이며 현대인들의 심리와 가족에 대한 정의를 여성특유의 꼼꼼하고 정련된 필법으로 새겨놓은 영화 토일렛을 보고 나오면 마음이 푸근해질 겁니다. 그래서 이 영화보고 나서 일부로 한 정거장 더 걸어 차를 탔습니다. 느리게 사는 게 결코 손해보는 건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