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존레논 비긴즈 노웨어보이 - 당신의 멘토는 누구인가요

효준선생 2010. 12. 8. 00:26

 

 

 

지금은 비교적 흔한 단어가 되었지만 멘토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힘들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일명 사수라는 용어가 더 통용되던 시절 제대로 된 사수를 만나지 못하면 그 직장생활은 제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누군가 자신을 돌봐준다는 느낌, 믿을 만한 벽이 하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엄청난 힘이 되어준다. 그건 개개인의 능력발휘만을 말하지 않는다. 실수는 하더라도 포기는 하지 말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는 사람, 하찮은 삼류재주 같아도 한번 배워두어 평생 밥벌이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 굳이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돈을 내고 터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 사람 당신에게 있습니까


영화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보이는 전설의 밴드그룹 비틀즈의 멤버 존 레논 사후 3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일종의 추모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성공한 밴드의 화려한 면을 비추지 않는다. 골수팬이 아니고서는 잘 알기 어려웠던 그의 어린 시절, 그 중에서도 고딩시절의 그의 성장기록을 담아낸 기록물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간지나는 남자 배우와 그를 둘러싼 두 명의 여인, 그리고 나중에 비틀즈의 초기멤버가 되는 친구들, 그렇게 뼈대를 만들고 존 레논의 출생의 비밀과 질풍노도의 시절을 음악으로 채워가는 그의 약관의 이야기들은 영국 영화 특유의 연극적 작용과 해학이 곁들여져 볼만한 음악영화로 탄생하였다.


존 레논의 여자라고 하면 지금도 생존한 일본인 부인 오노 요코가 떠오르는데 영화속에서 그녀는 이름조차 언급된바 없다. 아니 비틀즈라는 그룹명도 등장하기 훨씬 전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비틀즈의 음악을 소개하기보다 존 레논의 음악적 토양이 바로 어머니라는 생물에 있었음을 간파하고 본다면 이해가 빠를 듯 싶다. 작은 기타를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딩 존 레논은 악동에 가까웠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물고 여자친구와 아무데서나 성행위를 하는 그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일탈적 행위란게 부모라는 보호막이 제거된 채 살아가는 소년의 심리를 대변하게 위한 극적장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린 존 레논이 왜 생모가 아닌 이모와 같이 살았는지, 그리고 모자 관계는 왜 그렇게 은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원했고 그런 관계가 나중에 존 레논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영화는 이런 점을 집요하게 조명하고 있다. 영화 말미에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과 앨범을 녹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존 레논의 표정을 보면 자신에게 음악적 토양을 선사한 그리움의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린 주로 비틀즈의 후반기 음악에 귀를 열고 감상을 해왔다. 락큰롤에 엘비스의 영향을 받은 듯한 선율, 거기에 당시를 휩쓸던 히피와 반전의 메시지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존 레논의 초창기 음악은 분명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자신의 영원한 멘토, 생모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있었음을 놓치지 말고 읽어내야 한다.


생모의 죽음은 존 레논이 그녀앞에서 아들로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시간뒤에 바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 슬픔은 결코 울고 짜는 통곡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곁에는 음악을 같이할 친구들 함께하고 있었고 어린시절부터 자신을 친부모 이상으로 돌봐준 후견인이자 부모의 서명란에 대신해줄 이모가 있었기에 그는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멘토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에게 어머니는 과연 멘토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