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베리드 - 누구와 소통하고 싶습니까

효준선생 2010. 12. 3. 02:17

 

 

 

 

흔히 알고 있는 공간공포증으로는 높은 곳에 오를때 느끼는 고소공포증과 사방이 막힌 곳에 있을때 느끼는 폐소공포증등이 있다. 이외에도 물속에 잠길때 느끼는 수면하 공포증이나 선이나 블록위에 있을때 느끼는 공포증등도 여기에 해당한다.


영화 베리드는 이중에서도 폐소공포증을 더 이상은 다룰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다룬 특이한 케이스다. 그것도 관이라는 그 뉘앙스가 주는 섬뜩함을 배가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하는 설정을 두었다. 이 영화는 처음 기획단계에서 줄거리보다 어떻게 하면 95분의 러닝타임을 오로지 하나의 공간 안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을 듯 했다.


가장 먼저 봉착한 문제는 조명이다. 흙을 덮은 관이라면 절대로 빛이 있을 수 없었는데, 주인공 폴이 가지고 있는 라이터, 핸드폰, 그리고 나중에 가해자로 보이는 남자가 제공한 야광봉으로 폴의 시선과 관객의 시선을 모두 해결하는데 동원되었다.


둘째 외부와의 연락이다. 이 점은 이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닌 이유를 넣어주어야 이야기 전개가 수월해 진다. 일체의 플래시백이 없기에 그는 외부와 통화가 가능한 유일한 수단인 휴대폰 애지중지한다. 정확하게는 휴대폰의 밧데리다.

그런데 그 휴대폰은 본인의 것도 아니다. 해독불가한 아랍어로 초기화된 휴대폰의 주인은 누구며 또 왜 그에게 제공했을까


이렇게 두 가지의 힌트를 제공하고 그것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가는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의 산소문제는 솔직히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폴은 몸을 뒤집기 조차 힘든 공간안에서 거의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치고 라이터를 켜는 바람에 산소의 양은 그가 숨쉬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맞겠지만 그 문제는 살짝 비껴가는 것으로 처리했다.


아무튼 이렇게 장치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으로 살펴볼 문제는 이 영화가 던지는 핵심적 메시지, 즉 사회적 이슈였다. 우선 소통의 부재다. 휴대폰이라는 기계의 도움으로 땅속에서 해외전화를 걸 수 있었지만 그가 전화를 걸고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보는 이로 하여금 허탈하게 만들기 까지 했다. 911, 국무성, FBI, 지인까지 그들은 곧 죽을 것 같다는 사람앞에서 몰인정한 반응을 보였다. 극히 사무적인 태도에 보는 관객들도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최고수준의 반응은 그가 몸담았던 회사 인사부장의 모습이었다. 그가 사고 당하기 직전까지만 자사 직원이었고 지금은 해고된 상태이므로 더 이상 자신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폴은 자신을 묻은 것으로 보이는 아랍인과 몇 차례 통화를 하는데 오히려 그 통화내용이 더 인간적으로 보였다. 돈을 내라는 말에 그 돈이 있었으면 자신이 이라크까지 와서 일을 하겠냐는 말, 그리고 모종의 미션을 수행하면 꺼내줄 것처럼 하는 바람에 그가 보여주었던 극단의 행동들, 그리고 아내와 아들에게 유언을 남길 때 겨우 700달러와 옷가지밖에 없다는 말은 무척 서글프게 들렸다.


그는 소리를 쳤다. 만약 자신이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거나 당신의 상관이라면 이렇게 미적거리고 있겠냐고, 모래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도 그는 위대한 조국, 미국이 자신을 구하러 와주리라고 믿었다. 비록 이 영화가 알려지지 않은 트럭운전사의 케이스를 다루고 있지만 충분히 호흡하고 충분히 세상을 볼 수 있는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신은 세상과 그리고 당신을 잘 알고 있는 지인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지를 묻고 있었다.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도 보이지 않는 모래가 턱밑까지 차오르는 답답한 2010년을 사는 지도 모른다. 관속이 아닌 대한민국 서울한복판인데도, 그래서 더욱 답답해졌다. 극장 밖으로 나오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찬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우린 대체 누구와 소통을 하며 살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