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렛미인 - 내 오래된 사랑이야기를 들어보세요.(강추)

효준선생 2010. 11. 17. 00:42

 

 

 

 

 

며칠전 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손바닥이 까지면 약간의 울혈과 피가 보였다. 소독약을 바르고 쓰린 상처를 일회용 밴드로 붙여놓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까지도 상처는 완전히 낫지 않고 딱지처럼 흉터가 남았다.


당신의 첫사랑은 지금도 유효한가. 미풍에서 시작했다 인생의 득도처럼 휘몰아가버리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마음에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새 사랑을 할때마다 쓰린 상처가 남긴 흉터처럼 그렇게 마음을 휘돌고 가지는 않았는가.


샤워를 하는 김에 하루 내내 붙이고 다녔던 밴드를 아예 떼어냈다. 좀 화끈거리기는 하지만 바람에, 생활에 지내다 보면 이내 언제 그랬나 싶게 쓰라림은 일상이 될 것이다. 사랑도 그래야지


영화 렛미인은 뱀파이어 영화지만 그건 표피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영화 전편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한 소년의 성장기에 필요한 것들의 은유며, 심지어 “그녀”조차도 사춘기 소년에게 필수적인 첫사랑의 매서운 맛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나이도 알지 못하고 성별도 알 수 없는 무존재적 존재인 “그녀” 12세 소녀로 보이는 뱀파이어는 소년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성적인 학대에 시달리는 소년에게 그를 괴롭히는 아이들은 수시로 “이 기집애”라는 말을 한다. 성장속도가 또래 아이보다 늦은 아이, 마치 변성기가 지나지 못해 합창단에서도 늘 소프라노를 맡아야 하는 소년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소년은 스스로 강해지려고 애를 쓰지만 그를 도와주는 주변인물은 없다. 오로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만 있을 뿐이다.


사람의 피를 빠는 뱀파이어란 존재는 소년에게 무슨 의미일까. 사람들에게 피는 살인의 의미지만 뱀파이어에게는 생존을 위한 양식이다. 소년은 츄잉젤리를 먹지만 뱀파이어는 구토를 유발하는 물질에 불과하다. 비록 소년은 생리를 하지 않는 남자아이지만 어쩌면 뱀파이어를 살게 하는 피의 의미는 성장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또래 여자아이의 생리혈이 아니었을까. 그것 역시도 정상적인 삶의 이유라고 보면 말이다.


또 하나 처음엔 누구나 소녀의 아버지라고 생각할 중년의 남자. 그가 병원에서 소녀에게 목을 내어줄때 그것을 부성애의 마지막 발로라고 보았지만, 그의 존재가 들어나면서 사랑의 영속성에 대해 심오한 물음을 던져주었다. 이 병원신이 왜 영화의 처음과 중간에 두 번에 걸쳐 등장하는지는 영화 마지막 기차장면과 맞물려 있다. 나이를 먹지 않는 “소녀 뱀파이어” 그리고 그녀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는 건 남자 뿐이다. 그리고 그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저질러 그녀를 생존시켜야 한다. 그 몫은 이제 소년에게 돌아온다. 기차안에서 소년은 여전히 츄잉젤리를 씹고 있다.  

 

 

 

 

 

 

 

이 영화는 섬칫하면서도 음울하고 놀라우면서도 연민으로 가득채운 마치 북유럽의 겨울을 연상케 한다. 눈은 사위를 채우고 많아 보이지 않는 등장인물들, 그들은 소년에게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존재가 아닌 마치 섬처럼 동떨어져 있다가 그저 희생양으로 사라지고 만다. 심지어 선생과 부모까지도.


이 영화에서  “소녀”는 몇 차례 “소년들”에게 들어가도 돼냐고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 제목과도 일맥상통한다. 소년에게는 유혹의 손짓처럼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지만, “소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었다. 오히려 “렛미아웃(의역해서 나에게서 멀어져야 해)”을 외치고 싶었을 텐데...


이제 상처는 다 아물어간다. 하지만 다가올 인생의 더 큰 상처가 소년을 기다리고 있다. 그걸 알기는 아는 걸까 누구나 성장을 하고 아픔을 겪고 그게 인생의 맛이라며 안위하고 살지만 이 영화 참, 무섭고도 슬프다.


시사회가 끝나고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할 수 있냐는 앙케트조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뭐 저런 끔찍한 걸 묻냐 했는데 귀갓길... “영원히” 사랑한다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