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초능력자 - 서클렌즈 하나로 세상을 유린하다

효준선생 2010. 11. 13. 03:00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하곤 했을 것이다. 세상에 나만 움직일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움직일 수 없었으면 좋겠다. 그럼 길거리 맛있는 것도 그냥 먹을 수 있고 백화점에 가서 물건도 그냥 가지고 나올 수 있고 은행에서 돈도 가지고 나올 수 있고 또 여탕에 가서 몰래 훔쳐 볼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라고.

이런 상상은 간혹 투명인간에 투영되어 정말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현실같은 상상에 빠지며 흐뭇해 했던 꼬마시절의 환상들. 나이가 들면서 그런 환상은 망상일뿐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잊혀진 추억으로만 남았을 것들이 누군가의 메가폰 앞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비록 영화속이지만.


사회면 가십란에 종종 이런 기사가 올라오곤 했다. 최악의 사건 사고 현장에서 모성의 힘으로 커다란 트럭을 들어올리고 그 밑에 깔린 아이를 구해냈다는 둥의 이야기. 요즘엔 듣기 어려운 것을 보니 그 엄청난 괴력의 모성은 전보다 쪼그라든 모양이다.


초능력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초과해 드러내는 이른바 믿을 수 없는 능력을 말한다. 영화 초능력자에서는 이름도 변변히 밝히지 않은 남자(강동원 분)가 바로 이런 초능력을 발휘한다. 그의 초능력은 오로지 눈에서만 발광하는 일종의 텔레파시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독심술과도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초능력은 매우 제한적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성인 남성 한 명 제대로 때려눕힐 힘도 없다. 주변사람들의 십시일반 힘을 빌려 자신을 해하거나 혹은 자신이 제거하고 싶은 인물들을 해치우는 정도다. 단지 상대방을 자살에 이르게끔 하는 능력은 좀 무서워 보인다.


그런데 그 초능력의 원천이 궁금했다. 어린 시절 병에 걸린 것도, 그렇다고 유전도 아니고 약을 잘못 먹은 것 같지도 않다. 강동원과 정말 닮은 아역배우를 캐스팅하고도 제대로 써먹지 못한 채 흐지부지 넘긴 건 정말 아쉽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는 초능력을 가졌고 돈을 훔치거나 불특정 다수를 해치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이 정도가 되면 사이코패스 정서의 시한폭탄이나 다름 없는데도 그의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세상은 그의 존재를 방임했단 말인가. 하기사 수시로 발생하는 미제사건의 범인은 바로 그런 초능력자가 아닐까 하는 섬뜩한 생각도 들긴 한다.


그런데 제 맘대로 살 것 같았던 그의 앞에 좀 부실한 모습으로 등장한 인물은 임규남(고수 분). 눈빛으로 조종하는 초능력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으면서 사단이 일어난다. 영화 초능력자는 앞부분 다 생략해도 되고 바로 이 두 명의 초능력자의 만남부터 보기 시작하면 된다.

임규남에게 왜 초능력자라는 딱지를 붙이냐고 묻는다면 영화를 다 보든지, 아니면 초능력자의 초능력이 통하지 않기에 초능력자라고 하는 것이니 트집은 잡지 말기를.


그들은 우연찮게 만났고 첫판에서는 임규남의 패배로 끝났지만 서른 평생을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살았던 남자에게 임규남의 등장은 솔직히 자존심상하는 일이다. 지속적으로 그를 괴롭히고 지인을 죽이는데도 유토피아의 임대리, 임규남의 끈질긴 추적은 질기다. 그리고 영화는 이걸로 끝내어야 했다.


그런데 특이한 소재의 개성강한 단편영화로 만족하지 못함이 영화 초능력자의 모순이자 패착이었다. 둘의 만남이 반복되면서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지루해졌고 기묘한 시퀀스만 중복적으로 드러났다. 서클렌즈를 낀 남자의 강렬한 눈빛, 지나가는 사람들의 차렷자세, 피를 흘리면 두들려 맞고도 어느새 말짱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임규남. 무게감없는 이야기는 도무지 끝이 나질 않는다.


둘 중 한명은 죽어야 끝이 나는 치킨 게임은 결국 성사되지만 그 결말은 선뜻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심금을 울리지도, 수긍이 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스펙타클하고 장엄한 장면이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심하게 말해 보너스 컷으로 보여준 임규남의 초능력 발휘 장면은 배우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명장면(?)으로 남을 것임을 확신한다.


영화 초능력자엔 두 명의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아니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감독이다. “초능력자에게 맞서는,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단 한명”, 이런 기발한 단발적인 상상력 하나 가지고 두 시간짜리 장편을 만들어낸 그야 말로 초능력자로 사료된다.